내 남자가 한 번의 섹스를 위해 돈을 지불했다고 상상하면 끔찍하게 싫다. 그럼에도 결국 남녀간의 데이트에서도 남자가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했느냐에 따라 잠자리 가능 여부가 판가름 난다.

남편과 워커힐 벚꽃축제에 간 D는 4만 5000원이나 하는 샌드위치 세트를 산 뒤 남편의 구시렁거림을 들어야 했다. D는 새침하게 “나랑 데이트할 때였으면 그랬겠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D의 남편은 “그때였다면 45만원에 W호텔 방을 잡았겠지. 파산할까봐 결혼했다”라고 답했다.

농담처럼 주고받은 말이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한 번의 섹스를 위한 남자들의 고단한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남편은 D와 데이트를 하면서 두 달 만에 300만원을 모아두었던 적금 통장을 탕진했고, 야근수당으로 카드 연체를 막아야했다. 그러곤 세 번째 여행을 떠나서야 겨우 첫 섹스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D는 비용을 지불한 것이 아까울 것 없는 방중술에 능통한 타고난 요부형 여자였기에 남편을 천국으로 인도했다. D같은 여자는 잭팟이나 마찬가지! 데이트가 아닌 서로의 목적에 부합한 원나잇이라 하더라도 술 좀 사주고 공을 들여 꼬드긴 예쁜 언니가 호텔 침대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보단 여기까지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란 식으로 가만히,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을 확률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하룻밤이든 애인이 되어 여러 밤을 보내든 섹스에 지불하는 남자들의 비용은 만만치 않다. 괜찮은 얼굴과 성격으로 돈도 제법 벌고 있지만 그 돈을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 마음먹은 이상, 여자를 사귀면 새어나가는 돈이 많다는 이유로 연애는 안 하기로 마음먹은 청춘들을 몇 안다.

사랑이 아니라 단지 섹스를 하고 싶은 욕구를 해소해야겠다는 마음이라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여성'을 찾는 것이 오히려 비용절감뿐만 아니라 수익을 획득하지 못한 노력에 대한 손실도 막아주는 안전장치가 된다. 게다가 데이트 상대에게 자기 취향의 섹스를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화대를 지불하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그 질이 보장된다.

남자들이 하루 데이트에 30만원을 쓰는 것이 ‘오늘 밤 섹스를 하겠노라’는 엉큼한 생각만 가득 차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섹스라는 것에는 동의하리라 믿는다. 물론 남자에게도 감정적인 교감이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진 않겠다. 매매로 이루어진 섹스는 건조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도 피곤하고 힘이 들어도 즉각적으로 여자를 사는 형태가 아닌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자에 대한 남자들의 이중 잣대 때문에 섹스의 비용이 높아진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잠자리를 하고 그 뒤에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지만, 섹스가 쉬운 여자는 헤어지기도 쉬운 여자. 머리보단 아래에서 반응이 먼저 오는 여자는 결국 결혼상대로는 적합하지 않은 여자라는 식의 판단. 남자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여자들의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쉽지 않은 여자가 되려고 한다.

D 역시 가볍게 연애를 하거나, 하룻밤 즐기고 끝낼 남자에게 가혹할 정도로 데이트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결혼을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 상대였기에 ‘쉽지 않은 여자’ 전략을 펼친 것이고, 그만한 투자를 했음에도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인지도 모를 불안감을 갖게 만들어 결혼만이 답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결국 남자들이 섹스를 즐기는 여자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자기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똑똑한 여자들이라면 쉽게 옷을 벗어던지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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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토끼로 분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남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배려 없는 행동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보여줘야겠더라. 그래서 ‘우리도 한 번 찍어볼까?’라고 제안을 했더니 아주 신나서 덥석 물더라.” 삽입하고 한 시간이 넘도록 사정을 못하는 애인 때문에 괴로워하던 B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디오 촬영을 감행했다. 애인에게 ‘넌 너무 오래해!’라고 말해서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기에 간접적인 방법을 택했다. “우리의 섹스 풀타임을 담은 동영상을 같이 보는데 한 시간 동안 계속 ‘해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와 나 잘한다. 죽이는데’하면서 감탄만 하더라. 자기 아래에 누워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며 진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나는 안중에도 없더라니까.”

한 번 할 때마다 그곳이 쓸려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처음에는 ‘애정’으로 참아왔던 B는 자신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길게 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그 남자와는 더 이상 연애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B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인 편이었다. 평생 남자라곤 모르고 살다 결혼을 하고 첫 섹스를 하게 된 K의 지인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한 시간 즈음 하는 걸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녀에게 섹스란 고통이며, 오르가슴이란 미디어가 만들어낸 거짓부렁일 뿐이었다. 남편이 다가오면 질끈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한 시간만 참자’라는 의무감으로 버텼다.

어디 가서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없고 꾹꾹 참고 지내다 K에게 겨우 그 사실을 털어놓았고, K는 그것도 일종의 병이라고 병원치료와 부부 상담을 병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했다. K의 지인은 남편에서 조심스레 그 얘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남편은 버럭 화를 내더니 ‘자신은 정상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길게 못해서 난리인데 복에 겨워서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냐’며 그런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한 자신의 아내와 결혼도 안한 주제에 남의 부부 사이에 오지랖 넓게 참견한 K까지 싸잡아 욕을 해댔다고 한다.


짧게 하지 않으면 잘하는 거다? 그건 남자들의 대단한 착각이다. 한 시간 내내 삽입하고 피스톨 운동만 계속하면 여자 입장에서는 흥분도 가라앉고 질도 건조해진다. 너무 민감한 것도 탈이지만 너무 둔한 것도 문제다.

토끼처럼 튀어버리는 남자라면 차라리 미안함이라도 느끼고, 여자의 마음을 달래보려고 전희나 후희에도 공을 들인다거나 섹스 이외의 것으로 만회해 보려는 노력이라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여자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도 모른 채 길게 하는 남자(여자의 기쁨을 위해 사정을 참으려고 노력해서 그런 것도 아니면서), 도리어 그걸 잘한다고 믿고 있는 남자는 어디에도 쓸 데가 없다.

빨리 사정해버리는 조루의 경우에도 남자들은 병원 가길 꺼려하지만 지루는 더욱 문제될 게 없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물론 비뇨기과를 찾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주어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라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그건 명백한 문제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

의학의 힘을 빌려 고칠 수 있는 것이라면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섹스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동안 누워 ‘대주고’ 있는 느낌 밖에 받지 못하는 여자는 어디에서 섹스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과유불급. 적당한 게 제일 어렵지만 제일 좋은 것이다.









나이 어린 남자친구를 갖는 것. 이것은 나를 제법 능력있는 여자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남자들이 젊고 예쁜 트로피 와이프를 가지는 것과 다른 능력이다. 내가 가진 경제력이라는 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제력이 아닌 또 다른 매력, 나이 차도 제법 많이 나는 어린 남자를 사로잡은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동시에 나를 근사한 여자라고 생각해준다.

그런 주변의 반응을 느낄수록 어린 애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보다 근사한 건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계, 영계’하며 나이 어린 여자만 찾아대는 나이 든 남자들보다 훨씬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눈으로 현혹되기 쉬운 것보다는 다른 가치를 높게 평가할 줄 아는 남자, 그게 바로 그였다.

아무리 내 나이보다 두세 살은 어려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나이에서 나를 바라보면 피부 탄력이 예전 같지 않은 ‘아줌마’, ‘골골대는 늙은 누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스무 살인 내가 예비역을 보며 촌스러운 ‘아저씨’, ‘공감대 형성이 안 되는 나이 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여자로 봐주었고, 순수함이 꽤나 훼손됐지만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다. 그는 사회적 경험의 수치는 낮았지만 정신적 성숙도는 내 또래의 남자들을 가볍게 능가한 상태였다. 어리다는 것은 생물학적 척도일 뿐이었지만 ‘어린데도 불구하고 이럴 수 있다니’. 그의 배려와 훌륭한 성품 때문에 어리다는 사실 자체도 미덕이 되었다.

특히 그의 존재 자체에 대해 고마워할 일이 생겼다. 지난 주 금요일, 회식을 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3차로 클럽을 가게 됐다. 피부가 애기처럼 뽀얗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귀여운 남자애가 우리 주변에서 춤을 추더니 나에게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누나, 그런 건 상관없고 말야. 가끔 만나서 나 밥 좀 사줘요”하는 거였다. 아, 두통. “누나~”라고 애교를 부리면 세상 누나들이 자신에게 다 녹을 거라 믿는 저 근거 없는 자신감과 개념없는 모습 덕분에 나이 어린 내 애인은 가치가 더욱 급상승했다.


 

바람직한 연하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애쉬튼 커쳐와 데미 무어. 무려 15살 차이.
아무리 전신성형까지 마친 데미 무어라지만, 아들과 엄마 같이 나온 사진이 대부분이라 사진 고르는데 애먹었다.
the 70's SHOW의 꼴통 마이클 켈소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데, 이토록 완벽한 연하남이라니.





연하와 데이트를 하거나 사귀는 것이 지금에와서 유별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주변에 이런 저런 각자의 이유로 연하남과의 연애를 더 선호한다. 섹스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금방 지치는’이 아닌 ‘금방 다시 서는’ 한 살이라도 어리기에 가능한 체력을 사랑하는 누나들도 있다.

긴장의 연속이자 정치적 권력 다툼 속에서 밥그릇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직업군의 누나들은 연애 관계에서는 자기 말이라면 무조건 잘 따르고, 자신을 존중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어린 남자를 택하는 게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 소녀같은 누나들은 나이가 들수록 매번 더 나이가 어린 남자들과 연애를 하기도 한다. 대학에 갓 입학해서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아직은 순진하고 순박한 그들의 순수한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누나들의 니즈(Needs)를 파악한 영악한 연하남들도 생겨난다. 누나를 그저 자신을 사육해주고 보살펴줄 작은 엄마 즈음으로 생각하고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서로 필요하는 바가 일치한다면 성인 두 남자가 어떤 관계를 맺든 각자의 선택이지만, 어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순수함을 기대할 수 없는 ‘순수의 시대’는 아주 오래 전 퇴색된 듯한 이런 세태에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러나 내 어린 남자친구는 색 바랜 순수에 핑크빛을 번지게 만들고 있다. 나는 그에게서 크나큰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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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는 대학가의 원룸촌에 살고 있다. 원룸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D가 사는 건물도 방음에 취약하다. 그렇다보니 옆방에 누가 사느냐에 따라 주거환경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D는 이른 아침부터 “Oh~Oh~Oh 오빠를 사랑해. Ah~ Ah~ Ah~ 많이많이 해.” 오빠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보겠다는 소녀들의 교태로운 목소리에 잠을 깨야한다. 옆방의 알람소리 때문에 새벽 3시에 잠든 D가 6시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녀들의 목소리는 10분마다 꼬박꼬박 6번을 울리고 나서야 옆방 남자는 침대에서 일어나 알람을 끈다.

야행성 인간인 D는 반복되는 알람소리에 괴로워하면서도, 자신과는 다르게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알람소리는 본인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하는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들려오는 옆방 남자와 그의 여자 친구가 정사를 벌일 때 들리는 생생한 사운드까지 참아야 하는 것인지 D는 반문했다. 특히 옆집 남자의 여자 친구가 내지르는 너무도 선명한 교성.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을 정도로 그 소리는 지나치게 높고 간드러졌다.

D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내가 사는 원룸이 영국 뉴넘 칼리지의 기숙사라도 되는 것 같아. 옆방 남자에게 벽이 매우 얇으니 ‘야간 행동’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e메일이라도 보내야 할까봐.” 옆방에서 들려오는 사랑을 확인하는 동시에 성욕을 채우는 행위 자체는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여자의 꾸며낸 게 분명한 교성 소리는 너무나도 거슬린다는 것이다.

D는 그것이 가짜가 아닐까 의심했다. “'가짜'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매끄럽고 규칙적인 교성을 지를 수가 있는 거지? 지나치게 깔끔한 것, 규칙적인 것, 아름다운 것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옆방 남자는 여자의 뻔한 교성에 속아 넘어가겠지. 멍청한 녀석 같으니!”

D와 나 역시 섹스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니므로 “이웃을 배려해서 음소거 상태로 섹스하세요!”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화와 같은 매체에 익숙해져버린 나는 날것 그대로의 상태보다 연출된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고 있음으로, 적당히 연출된 어느 정도의 신음소리는 섹스할 때 흥을 돋우어 준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지겨운 섹스 앞에선 스스로 기분을 내볼 요양으로 평소보다 좀 더 교태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걸 방음이 안 되는 집에서 다른 사람이 들으면서 괴로워할 정도로 시끄럽게 질러대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임에 분명하다. 옆방 남자와 여자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랑에 빠져있는 것일까?

옆방 남자의 여자 친구는 AV의 여배우처럼 과장된 소리를 내면 남자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잘못된 성지식에서 비롯된 강박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둔감한 D가 듣기에도 진실보단 거짓에 가까운 신음소리라면 그 남자도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옆방 남자도 여자 친구의 신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건지 어떤 건지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는 것보단 반응이 있는 게 더 나을 테니까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방음이 잘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옆방으로 소리가 넘어가게 내버려둠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난 이 여자를 이렇게 만족시키고 있어!’하며 자기 과시를 하는 타입의 남자일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생각과는 반대로 어쩌면 누구보다도 여자 친구의 교성을 곤란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은 옆방남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서 여자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것인지도.

옆방 남자와 여자에 대한 정답 없는 추측을 하는 와중에도 밤 11시가 넘어가자, D에게서 불평 가득한 문자가 왔다. <오늘은 참다 참다 벽을 두들겼는데도, 그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섹스를 하고 여자는 더 크게 교성을 질러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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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타자만 잘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스포트라이트는 홈런 친 타자가 받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야구를 보기 시작하면서 야구는 투수의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거죠.”

S는 스무 살 때부터 술자리에 남자가 한 명이라도 끼게 되면, 시시각각 돌발적으로 주제가 바뀌는 여자들의 수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를 위해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나 자동차, 심지어 아직 출시되지 않은 IT제품에 대한 화제를 슬쩍 던지곤 했다.  그러면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을 잡은 것마냥 S가 이끄는 대화의 세계로 따라 들어오곤 했다. 구원 받은 그는 S처럼 말이 통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감복하고 그것은 곧 호감으로 발전되곤 했다.

S의 주변에는 항상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S는 그 인기를 누리면서도 어느 누구의 고백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S는 야망이 큰 여자였다. 복잡한 화살표가 얽혀 있는 캠퍼스 내에서 연애할 마음은 없었다.



S는 졸업 하자마자 야구 동호회에 가입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은 여자 신입이라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S는 눈에 띄지 않게 관찰자 모드를 유지했다. 대신 카페에 올라온 회원 소개란을 꼼꼼하게 읽었고 사진을 찾아보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괜찮은 남자 리스트를 뽑아놓고, 야구 관람 정모 때 그들이 나오는지 확인했다.

몇 번의 정모 활동 이후 S는 한 명의 남자를 집중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잠실 근처에 자신 소유의 한의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자들이 혹할 만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야구광인 덕분에 간만 보여주다 공식적인 연애는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가여운 남자였다.

S는 웬만한 남자 못지 않게 야구 룰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도 너만큼 잘 알고 있다' 작전은 쓰지 않기로 한다. '야구 아는 여자' 순간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다 알고 있다면 야구를 관람하면서 대화할 일 없이 그냥 경기만 보게 될 게 뻔했다. S는 야구 초보인 듯 그와 함께 야구 관람을 하며 룰을 하나하나 배우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에게 그녀보다 우월한 지위를 줌으로써 그녀를 보살펴주고 이끌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이다.

"다음 타자는 번트를 노릴지도 모르겠네요." S의 적절한 상황 판단에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까 번트·볼넷 그리고 데드볼 설명해주셨잖아요. 지금 노아웃 상태에 두 명이 출루해있으니 번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야구 관람 도중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재빠르게 응용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준 S. 가르친 보람을 느끼게 하고,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호감도를 급상승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진 대사였다.



지난 14일은 화이트데이거나 일요일이기 이전에 잠실구장에서 두산과 LG의 시범경기가 열린 날이기도 했다. 대략 1만 8000명의 관중이 외야석까지 꽉 들어차서 역대 시범경기 중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그리고 꽤 많은 커플들이 야구를 즐기고 있었다. 그 속에는 결혼 3년차인 S와 한의사 남편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전략적 접근이긴 했지만 그 둘은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사이좋은 커플이었다.


실제 연인 사이인 배우 윤진서와 야구선수 이택근. 게스 언더웨어의 “FANTA-G” 프로모션 화보 컷

 

 

여성이 대접받고자 하는 방식의 데이트들.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기, 서울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시기, 근사한 자동차를 타고 한적한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 하기. 그렇게 분위기 잡고 앉아있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남자는 고삐에 묶인 송아지마냥 답답증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그를 위해서 신상 구두와 연예인 가십에서 벗어나 남성이 좋아할만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데이트도 그가 좋아할만한 코스로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PC방의 커플 좌석이나 당구장에서의 데이트. 배려가 넘치고 센스 있는 여자로 보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는 침대에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보사노바풍의 따뜻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장난스럽게 춤을 추듯 방안을 이동하며 서로를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멈춰 서더니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응시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나체의 남녀가 보았다. 그는 우리의 모습이 비춰진 거울을 보고 있었다.

예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영화 ‘원초적 본능’. 그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고 흥분시킨 최고의 에로틱스릴러였다. 그렇기에 그 영화 속의 많은 장면들은 나의 성적 판타지에 영향을 미쳤고, 그 중 하나가 바로 거울이었다. 샤론 스톤이 연기한 캐서린의 침실 천장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려있었다. 정사를 나누는 캐서린과 형사 닉의 모습.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여 그것이 천장에 있는 거울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캐서린과 닉은 섹스에 몰두하느라 거울에 시선을 응시하진 않았다.

하지만 천장에 거울이 있다면 여자의 입장에서는 지루해지기 쉬운 정상위로 할 때 그의 넓은 어깨와 근사한 등을 본다든지, 섹스를 하며 짓게 되는 나의 표정을 관찰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허리와 엉덩이를 유연하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보면 몸이 좀 더 뜨거워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는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것과는 달랐다. 카메라의 적절한 뷰포인트와 결코 지루하지 않은 편집, 적당히 분위기를 살려주는 음향효과가 빠진, 날 것의 ‘나의 섹스’를 바라보는 것은 약간의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뒤따랐다. 거울을 보며 섹스를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이런 느낌을 받게 될 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와의 두 번째 섹스에서도 우리가 노닥거리는 소파 옆에 거울이 있었다. 거울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닌 나를 초대한 뒤 일부러 옮겨놓은 게 분명한 위치에 세워져 있었다. 그의 손길은 내 옷을 자연스럽게 한 겹 한 겹 벗겨낼 정도로 능숙했다. 그러나 서로의 몸을 만지고 자극하며 서서히 쾌락으로 빠져드는 순간, 의도를 가지고 자리를 잡고 있던 그 거울이 신경쓰여 쳐다보았다. 나는 거울 속에서 또다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거울 속의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르시스처럼 섹스를 하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있었다.

섹스를 하는 나를 거울을 통해 보는 것이 왜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와의 두 번째 섹스에서 밝혀졌다. 나의 섹스가 영화적이지 않고 현실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미 그가 거울을 장악하고, 내가 즐길 요소를 빼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둘 다 상대가 아닌 거울을 보며 섹스를 할 순 없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가 거울이 아닌 나에게 도취된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사진출처 - Gossip Boy

그가 먼저 거울에 시선을 꽂아 그에게 빠져있는 나를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내가 한 발 늦은 것이었다. 약간 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그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는 수월하게 여자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나는 경험이 풍부한 그를 통해 색다른 섹스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섹스란 이미 새로울 것도 없는 닳아버린 것이었고, 그나마 거울을 통해 자기 매력을 확인하고 스스로에게 빠져드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와 내가 닮은꼴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가 호숫가에서 수선화로 변한다면, 나는 그 꽃을 뿌리째 뽑아 바닥에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의 매력을 과신하며 상대가 아닌 자신에 집중하는 그의 거만함이 경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측면 거울이 아닌, 반드시 천장에 달린 거울을 보며 섹스해보리라는 투지를 불태웠다.











학교를 다닐 때 나는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책을 읽으러 가는 건 아니었고 서가를 천천히 걸어 다니며 어떤 책이 어디에 꽂혀있는지 눈에 익히는 걸 좋아했다. 가장 자주 찾았던 서가는 800번 대의 문학. 그 책장이 지겨워질 무렵에 다른 주제의 서가도 어슬렁거리게 되었다.

성과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한 서가의 구석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제목이 한자로 된 고풍스러워 보이는 책이었다. 어렵지 않은 한자. 봄춘 春, 그림화 畵. ‘한국의 춘화’라는 책이었다.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풍속화 중에 성에 대한 그림을 묶어 놓은 책이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춘화를 본 적이 없었기에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우선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이 없나를 확인했다. 그런 뒤 조심스럽게 책장에서 그 책을 꺼내들었다.

‘에~ 이런 거 였어?’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은 아주 단아했다. 봄기운 물씬 풍기는 마당이 그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림 왼편 상단에는 대나무 발을 쳐놓은 방문이 보였다. 어렴풋하게나마 사람의 형체라도 나타나있었다면 남녀가 포개져있나 보다 할 텐데 그런 친절함은 엿보이지 않았다. 단지 방 문 앞 디딤돌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비단 신발 두 켤레로 모든 것을 추측해야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그림은 굉장히 노골적이었다. 나는 그저 남녀가 서로를 희롱하며 유혹하는 야한 그림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스무 살의 나는 아직 포르노그래피를 제대로 경험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야하다는 건 남녀가 키스한 뒤 침대에 눕고 화면이 어두워진 뒤 다음 날이 되는 정도였다. 남녀의 성기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성적 결합의 순간을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해놓은 춘화. 그게 내가 남자의 성기를 처음으로 보게 된 순간이었다.

상상 이상의 수위를 가진 그림에 나는 놀랐다. 손쉽게 포르노그래피를 접할 수 있는 세대이며, 동영상이 즐비한 이 시대에 조선 후기에 그려진 이차원의 단순한 춘화가 내 아랫배에 몽글한 느낌을 주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포르노그래피로써 손색없는 주제들의 향연이었다. 다양한 체위는 물론이거니와 성행위를 몰래 훔쳐보다가 흥분해서 자위를 하는 모습이라든가, 쓰리섬과 그룹 섹스도 그림의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의자를 사용한 섹스나 우물가에서 이뤄지는 후배위까지 거침없는 그림들이 펼쳐진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춘화는 특유의 소박함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자연 경치와 어우러진 야외의 섹스에서는 운치가 느껴졌다. 사람과 자연이 음양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건강하고 편안함을 주었다. 혜원 신윤복의 그림은 남녀 간에 직접적인 성행위가 없는 그림에서조차 에로틱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남편을 잃은 과부가 야심한 밤에 춘화집을 보고 있는 그림은 여성의 욕망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섬세함이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색채가 화려한 정재 최우석의 그림은 다른 두 화가의 그림보다 조야하고 품격 면에서 밀리지만 그래서인지 좀 더 야하고 강하게 느껴졌다.




지금에 와서 제일 야한 그림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제일 첫 번째 장에 나온 그림을 선택할 것이다.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그림이라고 해야할까나. 지난 주 내내 이른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꽃샘추위가 몇 번 지나가야 완연한 봄이 찾아오겠지만, 춘화 한 폭으로 우리네 밤에 먼저 봄을 피어오르게 만드는 건 어떨까? 춘화는 꽤 괜찮은 흥분제가 되어줄 것이다.



 




그와 나의 입술이 살포시 포개졌다. 그의 입술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입을 살짝 벌려 낮은 탄성을 내뱉자 그것이 신호인 냥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마치 빨아들일 정도로 강렬한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 집중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과연 이것보다 더 부드럽고 좋을까?'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자라고 있었다.

그 전날 동아리 MT, 성적 경험이 많은 것이 곧 자신의 매력이라고 믿는 한 선배가 어린 후배들을 모아놓고 이런 말을 던졌더랬다. "남자보다 여자의 입술이 훨씬 부드러워." 굳이 키스를 해보지 않아도 립밤이니 립글로스니 하는 것들로 평소에 관리를 꾸준히 잘 하는 쪽이 여자이니 당연히 그럴 법하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막상 키스를 할 때 체감하는 부드러움은 다르지 않은가. 지금 키스하고 있는 그의 입술도 까슬까슬하게 잘 트곤 했지만 키스할 때만큼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변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여자랑 하는 키스'에 사로잡혔다. 물론 성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 건 아니었다. 해결되지 못한 호기심은 나날이 커져갔다. 나의 새로운 로망에 대해 알게 된 P양은 "현정, 좋아하는 립글로스는 어떤 맛이야?"라며 예쁜 립글로스를 바르고 기꺼이 그 상대가 되어주겠노라 나섰다.

박애주의자인 A양 역시 "키스는 좋은 거니까, 남자든 여자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중요한 거잖아. 너라면 해도 좋아"라며 욕구해소에 도움을 주겠노라 했다. 그녀들에겐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키스라는 행위 자체가 성적 긴장감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친구랑은 해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 생애 여자와 키스를 해볼 절호의 찬스를 날려버리고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인터넷 동호회의 모임이 있어 나가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서는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던 동갑내기 여자를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얌전하고 차분한 인상을 가진 그 여자 역시 나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다들 술이 좀 취한 상태에서 흑기사, 흑장미를 부르며 소원으로 상대에게 키스를 하는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들 취기를 빌려 마음에 두고 있던 상대 혹은 연막의 상대를 지목하기 바빴다.

그 와중에 벌칙을 받게 된 나는 그녀를 지목했다. 다들 예상치 못한 상대의 지목에 꽤나 놀란 듯 했다. 왠지 오늘의 분위기라면 그녀도 OK할 것 같았다. 그녀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오랜 소망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보니 흥분도 되고 오감이 집중되었다. 우리는 10초간의 짧은 키스를 나누었다. 그 선배가 말한 '더 부드럽다'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이로써 호기심 해결.

그녀와 키스를 마친 뒤, 나의 행동이 이 모임에 나온 남자들의 동물적 본능에 자극을 준 것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미국드라마 '프렌즈'나 미국영화에서 서양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 중 레즈비언 커플과 섹스하는 것이 언급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의 눈에 어린 욕망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어색한 첫 모임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상냥한 미소, 달콤한 애교 한 번 날리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다 여자와 키스를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가져와 다른 여자들이 눈독 들이고 있던 매력남을 수고스럽지 않게 낚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자랑 한 키스의 섹시한 효과라고 해야 할까?







 






"이 짐승!" 90년대 드라마에선 여주인공이 자신에게 치근거리는 남자에게 뺨을 올려붙이며 내뱉던 단어가, 지금에 와선 정 반대의 의미가 되었다. 초콜릿 복근을 기본 옵션으로 한 야성적인 섹시미를 가진 남자를 뜻하게 되었으니, 짐승이라는 단어만큼 그 지위가 격상한 단어가 또 있을까? 이제 남자 연예인들에게 '짐승'은 '꿀'이라는 수식어만큼이나 달콤하게 원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노출이 등장하지 않는 요리 드라마의 보도 자료에도 남자배우들이 식스팩을 가진 '짐승남'이라고 홍보한다.

이 시대는 여자들로 하여금 짐승남을 욕망하게 만들고, 남자들은 초콜릿 복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진짜 짐승남을 갖는 것도,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드라마 '추노' 속에 큰 주모는 왜 최장군의 목욕씬을 보며 하악거리지만, 왜 정작 그를 제대로 쓰러트리진 못했을까? 그것은 큰 주모가 최장군을 짐승남으로 만드는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 반대로 혜원은 비록 드라마 속에선 민폐 108종의 된장 내숭 언년이지만 밋밋하고 허약해보이던 양반집 도령을 짐승 중의 짐승으로 만들어낸 조련사이며, 그 짐승을 사로잡고 있다.

남자가 짐승이 되기 위해서는 복근 운동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초콜릿 복근은 자기 여자를 지켜내기 위한 과정 중에 도출된 산물일 뿐이다. 남자를 짐승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여자', 너무나 사랑하기에 반드시 지켜내야 할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기에 짐승으로서의 매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대길이 8년 동안 애타게 언년을 찾지 않았다면, 최장군이나 왕손이에 비해 더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 백만 대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죽으면서도 '나의 왕비, 나의 아내, 나의 사랑'이라는 세 마디를 내뱉으며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감각적이면서도 잔인한 화면으로 가득했던 그 영화가 여심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 2010년 새로 시작한 미드 '스파르타쿠스'의 '그나마 노출이 덜한' 장면 중에서


또 한 편의 드라마가 있다. 방송사 Starz에서 제작해서 현재 미국에서 방영 중인 역사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기원전 로마공화국 시절, 검투사로 전락한 트라키아인의 노예반란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TV판 '300'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상이 화려하고, 매회 두 번 이상 섹스 장면을 포함하고 있어 성인에게 있어서는 꽤나 즐거운 눈요기가 될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도 짐승남이 즐비하다. 헐벗은 남자들의 몸은 무척이나 훌륭하다. 이 드라마의 미덕이라면 여주인공들도 벗기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길들여지지 않을 야생의 짐승남인 주인공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아내 수라의 섹스 장면은 옥시토신과 아드레날린이 마구 뿜어져 나올 정도로 에로틱하다. 저런 표정과 저런 동작으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드라마에서도 스파르타쿠스는 노예로 팔려간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라는 로맨틱한 이유로 검투사가 되어 짐승남의 매력을 뿜어낸다.

타고나길 남자다운 근사한 남자들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짐승이 되는 남자들을 우리는 진짜 짐승남이라고 부른다. 여자들이 욕망하는 짐승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브라운관 속의 짐승남은 허상이며 환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짐승이 되는 남자를 바라지만 그 사랑 자체도 쉽게 변하는 세상 속에 살기 때문이다. 변치 않을 사랑을 받는 여자란 1%도 안 될 것이다.

현실에서 '남성호르몬 가득 차있음!' 그걸 온 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근육질의 멋진 남자가 정령 한 여자에게 만족하리라 믿을 수 있을까? 남자를 진짜 짐승으로 만드는 여자가 내가 되길 바라겠지만 그것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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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꾸미는 데 인색하지 않은 패셔너블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바지를 벗겨보니 어울리지 않게 사각 트렁크 팬티를 입고 있다면 그 남자는 아직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속옷에 대한 자기 주장을 펼치기 힘든,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대로 입는 남자.

당신이 고무 밴드 부분에서 'The Brave Man'이라고 적힌 팬티를 보게 된다면, 그것을 새로운 브랜드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면 100%, 카키나 군청의 무난한 색상, 그리고 착용감이 그리 나쁘지 않지만, 그것은 바로 군수용품 팬티. 그 남자는 제대하면서 군용 팬티를 용감하게도 제법 많이 챙겨가지고 나온 알뜰살뜰한(?) 남자이거나, 휴가 나오자마자 당신에게 달려든 군인 남자.

짝퉁 캘빈 클라인 팬티를 입고 있는 남자라면 허영심이 가득할 것이고, 캘빈클라인 진품 팬티를 입고 있다 하더라도 허영심 지수 몇 프로는 내재된 그런 부류. 그래도 속옷 브랜드까지 신경 쓰는 남자라면 섬세한 편에 속한다. 팬티에 무신경한 남자보다는 좋은 데이트에 이어 만족할만한 섹스를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자신감의 부재를 속옷의 화려함으로 커버하는 부류도 있으므로 - 브래지어 AA컵 사이즈의 여자가 보정패드를 두 개 즈음 넣고 가슴골을 잘 모아주는 브랜드를 선택하여 풍만한 가슴을 연출하는 것과 비슷하다. - 팬티를 바로 벗겨 섹스로 돌진하기 보단, 여러 부분에서 주의를 기울여 세심한 관찰을 한 뒤 섹스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덜 실망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는 너무 흔해져버린 캘빈클라인 팬티 대신 돌체앤가바나, 아르마니 같은 브랜드의 무채색 계열에 무난하면서도 깔끔한 드로즈 스타일 팬티를 입었다. 우리는 만나면 서로를 재빨리 벗겨 내거나, 그 시간마저도 아까워 반 즈음 벗은 상태에서 서로를 탐했기 때문에 그가 팬티를 입고 있는 장면보다는 섹스가 끝난 뒤, 내 속옷을 주워 입으면서 바닥에 떨어져있는 상태로 보는 게 더 친숙했다.

그날은 그의 벨트를 내가 쉽게 풀 수가 없어서 그는 버클을 풀기 위해 침대에서 잠시 벗어나야했다. 바지를 벗을 때 드러난 팬티. 그것은 무척이나 귀엽고 발랄했다. 하얀 바탕에 사랑스러운 연두와 노랑 그리고 분홍 땡땡이들이 가득했다.

그걸 보는 순간, 한껏 흥분했던 몸은 차가워지면서 차분해졌다. 둘이 함께 일 때 오로지 내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내게 정절을 요구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 바람을 그에게 전한 적은 없었다. 그랬다한들 테스토스테론이 왕성한 그가 한 여자와의 관계만으로 만족하지 않으리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족감을 위해선 충분히 감내할만한 쓸쓸함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있는 팬티는 그가 직접 골랐을 리도 만무한, 내가 아닌 다른 여성 취향이 여실하게 드러난 혹은 커플 속옷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는 다른 여자의 존재를 완벽하게 숨겨왔지만 나는 그의 팬티만으로도 직감적으로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 둘 사이에 필요한 예의에서 제대로 벗어나있는 그 팬티로 인해 섹스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졌다.

나는 침대로 다시 들어오려는 그의 가슴을 발로 애무하듯 살짝 밀어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키스를 할 듯 말 듯한 포즈로 그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몸이 문 앞에 도달했을 즈음 나는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모텔 복도로 쫓겨났다. 나를 만날 때조차 벗을 수 없었던 그 소중하고 의미 깊은 팬티만 입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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