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제스처는 확실했다. 키스를 나누다 나의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그의 팔에서 의지가 느껴졌다. 적당히 얇은 입술, 뾰족하고 단단한 턱을 지나 판판한 가슴까지 그는 나를 점점 아래로 보내려고 했다. 그의 몸에 딱 맞게 붙어 있는 팬티의 밴드 부분에 도달해서야 전두엽에 가해지던 힘이 사라졌다. 타이트하게 조여져있던 팬티를 벗겨내다 그의 페니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좀 더 핑크색이라면 좋을 텐데."

"그럼 넌, 결코 만족하지 못할 걸." 그가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고요한 밤의 공기를 타고 나즈막한 혼잣말이 그의 귀에 들어갔다. 평소에는 감정적인 반응을 잘 하지 않는 그였다. 그럼에도 발끈 한 건 아마도 대부분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페니스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거슬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마다 고유의 색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 역시 타고나길 핑크빛 유두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페니스가 수줍은 핑크색이길, 그가 경험이 많지 않은 순수한 남자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 것 뿐이었다. 그렇게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아래로 내려갔던 몸을 일으켜 그의 옆에 누우며 말했다. "오늘은 입으로 안 할래요.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그는 나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머리카락을 만져주며 자신의 페니스가 핑크색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귀엽게 느껴지긴 했다. "베이비 핑크색의 페니스를 가진 남자는 아무래도 섹스 경험이 부족한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남자와의 섹스. 안에 들어오자마자 사정해 버리고 마는 남자를 네가 좋아할 리는 없다." 우리 사이에는 소용없는 감정적인 줄다기리는 집어치우자는 의미였을 것이다. 다시 자신의 페니스에 집중해달라는 표현이기도 했다.

그의 페니스는 괜찮았다. 내 안을 빈틈없이 꽉 채우는 부피감이 느껴지는 느껴졌고, 내가 만족하기 전에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잘 했다. 다른 수식은 거추장스럽다. 그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동시에 나를 어떻게 다뤄야할지도 알고 있었다. 아니 여자를 잘 아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닳고 닳은 남자였다.

나는 그 능숙함이 지금 현재, 나에게만 제공될 것이라고 믿고 그에게 안긴 순진한 부류의 여자는 아니었다. 그의 효용성에는 유통기한이 있었다. 그는 유통기한이 적힌 파인애플 통조림이 아니었기에 그 시기가 언제 올지 모를 뿐이었다.

내가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며, 우리가 쉽게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태도를 계속 유지해줬더라면, 우리는 좀 더 오랫동안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섹스로 가는 단계가 짧아졌다. 그에게 있어 섹스에 대한 욕망만이 순수한 영역이었다.
                                                                                                                                                                                                                                                                                                     그의 말대로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를 다룰 줄 모르는 남자에게는 흥미가 없다. 하지만 나 역시 여느 여자들처럼 로맨스를 꿈꾼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왕이면 이번에는 영원한 사랑이 되길 바란다. 모순적인 태도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섹스를 할 수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이기 때문에 섹스를 한다는 느낌이 충만하길 바란다.

순간 이 남자와 무얼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그는 당황스럽게 나를 지켜보았다. "이 일은 다음 번에 보상해줄게요. 오늘, 이런 기분으로는 도저히 못하겠어요."  복잡한 마음으로 그에게 안기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고 먼저 그곳을 나왔다.   

그는 섹스를 하기에 나쁘지 않은 상대였기에 가벼운 관계라 할지라도 유지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은 무채색의 섹스가 아니라 핑크색의 로맨스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와 이제와서 사랑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몇 번의 로맨스를 통해 영원할 리 없는, 결코 일치되지 않을 사랑에 대해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어버렸지만, 내게도 섹스를 위한 섹스가 아닌 로맨스에 의한 섹스가 필요했다. 그걸 느낀 순간에 몸만 즐거우면 된다는 위선적 태도를 취하고 싶지 않았다.

 
















 

 

 

JUNE 2009



   WORDS 김현정(칼럼니스트)  Editor 이기원 
   photography 기성율  cooperation 딴지몰(www.ddanzim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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