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기억 없는데 ‘합의’가 가능한가요 


25살 여대생입니다. 남자사람 친구가 많은 편인데 얼마 전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끊겼어요. 친한 남자 선배와 술을 마시던 중이었는데 일어나보니 모텔이었어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했었고 술을 마시고 합의하에 섹스를 했다는 거예요. 섹스에 대한 좋지 않은 기분보다는 이 사람과 섹스를 했다는 것 때문에 사귀어야 하나 고민이에요. 그리고 그 선배와 어떻게 마주쳐야 하는지 걱정돼요.

 

 

 

 

A. 섹스 때문에 사겨야 하나요 


만취가 되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합의’라는 게 가능한 것인가요? 그 부분이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군요. 본인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인가요? 섹스에 대한 좋지 않은 기분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봐서 찜찜함을 느끼고 의혹을 품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질문자는 엄연히 성폭력을 당한 것입니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라고 부인할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여자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이 당한 데이트 성폭력을 스스로 무마하곤 합니다. 데이트 성폭력이라는 게 참으로 애매합니다. 둘의 친밀한 관계로 인해 확실한 No를 주장하지 않은 탓에 어영부영 섹스를 하게되는 경우가 숱하게 존재하죠. 두 사람과 주변의 관계로 인해 본인에게 부정적 여론이 생길수도 있기에 문제 삼지 않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그런 폭력을 쉬쉬 넘기다보니 대학에서는 무수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루머와 가십이 떠돌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자 스스로가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 보통의 경험>이라는 책을 추천해줄게요. 이 책을 차분히 읽어보고 자신이 겪은 일을 판단해보길 바랍니다. 이제부터 소위 ‘꼰대’모드를 가동하겠습니다. 술 마시는 거 좋습니다. 여자라고 조신하게 ‘술 못해요.’이러는 거 우습다고 생각해요. 저도 혈중알콜 0.04를 유지하는 삶을 살곤 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기억도 못 하는데 상대는 합의하에 섹스를 했다는 건 이상할 따름이죠.

 

질문자가 술기운에 ‘하자!’라고 설령 졸랐다고 하더라도 좋아하는 여자라면 좀 더 정신이 말짱할 때, 제대로 고백부터 하고 일정한 단계를 거쳐 섹스를 하는 게 믿을 만한 남자의 태도가 아닌가 싶군요. 술에게 알리바이를 전가하는 일은 그만했으면 좋겠네요. ‘연애를 못하는 이유’라고 SNS 상에 떠도는 글에 ‘술에 잘 취하지 않는다’라는 항목이 있더군요. 여자가 술에 취해야만 스킨십 진도를 나갈 수 있는 남자를 위한 배려 항목이라면 거지같지 않나요? 남자들에게 술 먹고 저지른 일에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도록 방어해주는 꼴이죠.


술이 작업 전선에 있는 남녀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데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질문자는 남자의 선배와 연애 모드로 넘어가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술을 마신 건 아니지 않나요? 인사불성의 상태에서 한 섹스가 좋은 섹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덧붙여 섹스를 했으니(기억에도 없는 것 같은 행위를 하고) 사귄다는 생각도 촌스럽네요. 질문자에게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 선배와 사귀는 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남녀 사이에 섹스를 나눈 것에 대한 보상이 사귀는 것으로 귀결되나요? 그럼 좋지도 않은 남자와 한 섹스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가요? 이 사건이 범죄가 아니라 그저 해프닝이라면 지나가게 두세요. 이런 식으로 연인이 된다고 해서 두 사람이 알콩달콩 행복할 거란 생각이 감히 들지 않네요.

 

 

 

 

 

2013-06-26 | 태그 657호, First-s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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