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성적호기심 
이해해야 하나요?

 

남자친구가 야동을 참 열심히 보더군요. 저에게도 같이 보자고 제안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아 거절했어요. 그런데 대체 어디서 요상한 것들을 구해서 보는건지 하루는 애널섹스를 해보자고 하더군요. 성적호기심이라고 이해한다 치더라도, 일반적인 섹스도 그닥 잘 하지도 못하면서 하고 싶은 건 어찌나 많은지. 또 어떤 날은 야외 공공화장실에서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이 원하는 걸 한번 말해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것저것 해보자고 어린애처럼 징징거리고 졸라대는데, 여자친구라는 이유로 그걸 다 들어줘야 하는 건가요? 

 

 

 

A. 역할에 휘둘리지 마세요

 

<규방철학>을 통해 사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의 몸은 너 자신에게 속해있어. 그것을 즐길 권리와 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그것을 즐기게 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너 하나뿐이야.” 요즘 패션잡지의 섹스가이드에선 유행처럼 사용되는 성적결정권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사드는 이미 18세기 후반에 성적 쾌락의 향유권까지 명시해 두었습니다.

 

모든 성적 행위, 쾌락을 즐기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일까지 전부 나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애널섹스나 어떤 장소에서 섹스를 할지말지는 전적으로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여자친구라는 현재의 역할 때문에 그것을 수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남자친구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한다면 ‘그걸 할 수 있을 만큼 널 사랑하는 건 아니었나봐. 내가 널 더 사랑할 수 있게 좀 더 노력해주겠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죠. 그가 사랑을 볼모로 삼은 건 비겁한 행동이니까요. 냉정해지는 수밖에 없죠.

 

그를 무척이나 사랑하는데도 주저하게 된다면 그가 성적인 일탈 혹은 모험에 동반할 만큼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것이겠죠. 여자친구에게 새로운 성적 활동을 제시할 때 남자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자 입장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두려움의 요소를 제거해주기. 모험심을 북돋아주기. 애정을 듬뿍 쏟아 행복감을 고취시켜주기. 조르거나 징징대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관계맺음은 끊임없이 타협점을 찾아나가는 것이니까요. 


야동을 보는 건 좋아요. 야동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성인이라면 그것이 현실 인간의 성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대체하여 자극적인 환상과 기호의 형태로 성을 다룬다는 것 정도는 인식해야겠죠. 불가능한 욕망으로의 집착은 자기 곁에 있는 실제적인 여성이 아니라 과장되게 연출된 여성의 쾌락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질문자가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즐거울 수 있다면 문제될 건 없겠지요.

 

하지만 원치 않는 섹스를 했을 때 느끼는 불쾌감과 괴로운 심정을 굳이 경험해보라고 하고 싶진 않네요. 나를 안기 위한 것인지 이 행위를 위해 내가 필요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의 기분같은 게 좋을 리 만무하거든요. 야동에는 언제나 새로움이 요구되지요. (명작이라 꼽힐 만한 훌륭한 야동 리스트들이 가득한데도 끊임없이 새로 제작됩니다. 인간이 이토록 질리지도 않고 꾸준히 열심히 하는 일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그의 환상도 그러할 것입니다.

 

다른 환상들, 새로운 요구들이 덩달아 양적 팽창을 하겠죠. 그때마다 다 들어줄 순 없죠. 근사한 항문 애무를 받다가 질문자 스스로가 문득 애널섹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상은 이 요구에 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2013-08-08 | 태그 659호, First-s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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