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정인지 사랑인지 모르겠어요


헤어진 전 애인과 잤어요. 제가 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고민돼요. 처음에는 좋아서 사귀었는데 오래 사귀다 보니까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겠어요. 싫다는 게 아니라 좋은 감정 위에 덕지덕지 다른 감정들이 붙어버린 느낌이에요. 그리고 친구, 연인, 조언자 같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 헤어지기도 쉽지 않고요. 근데 그 감정, 역할들을 다 떼버리고 좋아하는지 확인할 힘이 없어요.

 

 

 

A. 질문을 바꿔보세요


연애 초기 서로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경험하고 나면 또 다른 형태로 변한 혹은 진화한 두 사람 사이의 온기는 미지근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어떠한 인간관계도 한 가지 감정만으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걸 너무 서운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잘 보듬어서 식지 않게 유지하는 것. 그것이 오랜 연애 관계를 지속하는 방법이지 않을까요. 연이라는 건 쉽게 쌓일 수도 없는 것이기에 쉽게 끊어지지도 않죠. 헤어진 연인과 관계가 종결된 후에도 몸을 섞는 선택을 하는 건 마음이 확실히 돌아서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잔인하게 말하자면 손쉽게 잘 수 있는 상대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이별 이후 일상적이고 규칙적이던 섹스를 하지 못하는 상태 역시 견디기 힘들잖아요.) 둘만 아는 느낌. 서로를 원하는 그 순간의 표정과 제스처를 보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단호해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헤어진 연인과 잤다는 사실 하나로 자책하거나 괴로워할 필요는 없어요. 순간에 충실했고 그래서 위안을 받았다면 그걸로 된 거랍니다. 하지만 섹스에 대한 욕구와 사랑을 연결 지어 내가 여전히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우리 둘은 관계를 끝내기엔 서로에게 너무 얽혀 있나 하는 걸 고민하는 거라면 이때 필요한 질문은 “두 사람은 왜 헤어졌나?” 입니다.

 

어째서 연인인 동시에 친구이자 조언자 역할까지 해주는 그 사람과 헤어진 건가요? 사랑이 한 가지 색깔의 형태로만 존재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예전만큼 두근거리지 않는 상태가 견딜 수 없었던 건가요? 그렇지 않다면 두 사람 사이에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지점들이 도드라져서 갈등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은 건가요? 두 사람 사이에 덕지덕지 붙은 다양한 감정도 결국은 애정의 형태입니다.

 

역할을 거둬내고 순수하게 ‘좋아함’을 판단하려 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에게 완벽한 애정을 줘야 하는 것처럼 강요되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도 어머니라는 역할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 수도 있죠. 그 애정조차 완벽한 형태도 아니고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타인이나 다름없는 연인에게 기대한다면 질문자의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은 것 같군요. 후자라고 한다면 다시 그와 관계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아마도 깨진 머그컵을 이어붙이는 일이 될 겁니다. 제 모양으로 돌아오더라도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요. ‘내가 잘할게’ 와 같은 말로 다시 기회를 얻은 연인들이 오래지 않아 같은 문제로 다시 헤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욕정을 애정으로 착각하는 순간 여자에게는 비극이 닥칩니다. 왜 우리가 헤어졌나, 그리고 왜 다시 만나 ‘섹스’ 를 한 것인지 냉정하게 생각해보세요.

 

 

2013-05-08 | 태그 650호, First-s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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