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화를 내며 던져버렸던 선풍기는

다행히도 부서지지 않았어.

여름 밤의 온기를

식혀주는 바람을 여전히 만들어 내고 있어.

물론 예전보다 털털털거리는 소리를 좀 더 크게 낼 뿐이지.

선풍기 바람은

눈물도 말려주지.

 

 

 

 

서로에게 서로가 보이지 않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닿지도 않는 말을 하고

 

서운한 것이 많아.

하지만

한순간도 즐겁지 않은 적이 없었지.

그게 참 슬퍼.

 

 

 

슬픈 일이지.

널 견딜 수 없다면

즐겁지 않다면

쉬울 수도 있었을텐데.

 

 

 

 

타이밍이라는 게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면

항상 최악.의 타이밍이지.

 

내가 우울할 땐

너도 우울해.

그래서 나를 달래줄 기운 하나 가지고 있지 않지.

투정부리고 싶은데

애써 밝은 목소리를 가장하고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던진 질문은

너의 짜증을 가중시키고

넌 나쁜 목소리로 대꾸하지.

 

 

 

나는

조용히 조용히

가라앉아서는

 

'아, 질릴만한 여자.'

 

나 자신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지.

 

그 말이

나를 더욱더

질리는 여자로 만드는 것인지도.

하지만 실은 사랑받고 싶은 거잖아.

 

 

 

 

알아. 이런 기분일 땐

파헤쳐선 안돼.

그 기분을 분석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울해지지.

그냥 눈물을 흘려. 소리내서 울어.

이런 기분일 땐

누군가 대화해서도 안돼.

상처받을 수도, 되려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상태니까

 

 

그런데 왜 나는

머리로 아는 것을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주파수는 너인걸까?

아프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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