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화장대 위에 몇 개월 전에 내가 선물해드린 화장품을 발견했다.
거의 쓴 흔적이 없다 싶을 정도로 줄어든 양이 적었다.

고모님 말씀이 "손녀 딸이 주신거니 아껴아껴 바르겠다"고 하시며 
화장품을 볼 때마다 기뻐하셨다고 했다.

나는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은 기초화장품이었다.
처음 할머니께 선물한 스킨 로션을 다 써보시지도 못하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껜 항상 잘 못 했다.
모든 걸 받아주시니까 어리광부리기 바빴다.

 

동생과 아버지, 할아버지와의 관계.
우리 집 남자들과 좋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중재하고 내 마음을 달려주신 건 할머니뿐이었다.

 

늦게 일어난 일요일 오후.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났다.

 

 

 

지난 주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 때문에
마음이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고
갖가지 감정들이 올라오는 걸 억누르고 있었더니
평소에 잘 참았던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나를 휘감았던 것 같다.

 

결국 타인을 통해 해소할 수 없는 본래의 나약함일 뿐이라는 걸 알지만
차분하게 홀로 있고 싶었던 밤
마음의 평화를 내 스스로 깨어버렸다. 

나답지 않게 행동한 자신에 대해서도
나를 그대로 받아주고 보듬어주셨던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나를 아끼고, 좀 더 소중하게 행동해야하는 것이라고 반성했다.

결국엔 이러니저러니해도 생채기를 하나 더 늘이는 일일 뿐이니까.

 

부디 나의 기질에 맞게,
그리고 순간의 친절함에 흔들리지 않게
굳건한 마음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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