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는 아빠와 싸우고 나면 어린 나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너 때문에, 네가 있어서 아빠랑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 귀를 알아듣고, 그 의미도 파악했던 건 일곱 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특히 그날 싸움은 격해져서
엄마가 아빠를 밀치자, 중심을 잃은 아빠가 휘청하다 방 구석에 덜덜 떨고 있던 내 발을 밟기도 했었고
심하게 흥분한 엄마를 진정시키려고 하다 컨트롤이 안 되자, 아빠는 엄마를 때렸다.
엄마는 코뼈에 금이 갔는지 어쨌는지 병원에 실려가고야 말았다. 

나는 정말 억울했다.
나 역시 이렇게 싸우는 엄마, 아빠를 가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상해하며 병실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 나중에서야 이제 진실을 밝히실 때가 되었다고,
어느 재벌 집안에서 나를 맡기고 간 것인지 사실을 알려달라고 했다가
엄마는 벼룩시장에 날 팔겠다는 광고를 내겠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아빠는 엄마와 결혼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아빠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외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제시한 건 엄마였다고 했다.
출산할 좋은 달까지 고려했다고 하니 얼마나 치밀했는지
- 엄마는 자신의 우성인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대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중진술에 대해서
어린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하하하
이건 정말이지 잔인한 유머였다.

일곱 살짜리 꼬마아이에게
불행해하는 엄마를 보며 발목을 잡은 것이 나란 생각이 들게 만들어 좋을 게 무어란 말인가?

나를 낳았을 땐 너무 어렸던 엄마와 한량기질이 다분한 아빠.
이기적인 어른들이 대책없이 만든 게 나였다.



그래서 불행했냐고?
행복하진 않았다고 해두자.
그것이 나에게 미친 영향?
애정결핍, 믿음의 부재, 관계 형성의 어려움?
 
그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투덜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꽤 많이 극복한거니까.

내가 또 이런 얘기를 하면 엄마는 순간 눈물을 그렁그렁거리며
미안하다며, 마음이 아프다고 하시겠지.

그래, 적어도 미안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풀리긴 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아빠를,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이해하려고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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