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나는 연애소설을 좋아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나는 에쿠니 가오리든 요시모토 바나나든 말랑한 듯 하면서도 건조한 그런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가벼운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거였다. 한동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붙잡고 있었지만, 책장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던 것은 내 자신이 생각하고 고민하길 멈췄기 때문이었다. 이런 연애소설의 책장은 훅훅훅하고 넘어가서 반나절도 안 되서 다 읽어버린 것이다. 아아, 이 책을 계기로 알아버렸다. 나는 점점 고급 독자에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물론, 연애소설만 읽는 게 흠이 될 건 없다. 책도 한 번 안 펼쳐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손쉬운 TV나 인터넷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책장을 넘긴다는 건 의미가 있다. 연애소설만으로도 괜찮다.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찰랑찰랑하게 만들 수 있다면 더 깊고 넓은 세계에서 놀지 못하더라도, 놀라움을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고만큼의 즐거움을 얻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미호와 조지 사이의 긴장감이 좋았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와 다시 연애를 한 여자.

그 남자의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게 한바탕 퍼부을 때 후련한 느낌이었다. 물론 복수하기 위해 재결합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깨진 머그컵은 간신히 붙일 수는 있어도, 그 금이 간 자국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머그컵 1 이론에 맞게 미호와 조지가 끝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처음부터 감을 잡고 들어갈 수 있다. 여자가 받는 깊고 큰 상처, 그 섬세한 부분까지 헤아리고 있어 난 작가가 당연히 여자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저자 소개를 읽는데 남자여서 놀라긴 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무척이나 예민한 남자겠구나 싶었다.


소설의 큰 줄거리와는 상관없지만 조지가 미호의 몸을 씻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섹스의 장면을 묘사한 것도 아닌데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 그랬다. 여자의 몸을 제대로 씻겨줄 수 있어야 진짜 여자를 잘 다루고 잘 아는 남자라고 말했다. 그런 말 때문인지, 초반부의 조지에 대해서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뭔가 호감가는, 어딘가 괜찮은 구석이 있는 남자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 기대는 다른 표현을 하기 힘든데, 더럽게 깨져버렸다. 조지같은 무신경하고 이기적인 남자는 딱 질색이다.

 

연애소설로 어필하기 위해 미호가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서른다섯의 나이로 제목을 정한 것 같지만, 원제를 쓰는 게 훨씬 분위기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른다섯, 사랑>이라는 제목이 미호가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응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가볍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그러나 내게 아기의 등장은 거슬리는 장치였다. 어떤 의미로 등장하는 것인지는 알겠지만, 그런 부분이 클리셰였다.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있었다면 좀 더 세련되게 느껴졌을 것 같다.

 

어쨌거나, 간만의 연애소설이라 정말 후르륵 금방 읽어버렸다. 읽는 동안 느낌이 좋았다. 유지라는 남자 그리고 그의 문신도 마음에 들었다. 옛날부터 문신이 있는 사람은 피부가 양각과 음각이 느껴질 거라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참으로 웃긴 생각이었다. 피부를 물들이는 것이지 피부에 조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유지같은 남자라면, 유지의 문신이라면 혀로 핥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설정이 신선했다. 창녀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퇴폐적이거나 육체적 쾌락에 몰두하여 자신을 내팽개쳐버리고 마는 그런 여자의 이야기는 아니다.



클레르는 <밤의 클라라>에 의지하여 단정치 못한 싸구려 옷과 진하고 야한 화장으로 손님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낮의 클라라>는 복근운동을 하고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공원을 산책하고 독서를 한다. 서점을 들리고 계획을 세워서 오후시간을 보낸다.

- 클레르는 뒤라스나 막 콜레트의 책을 읽었다.

읽을 책 없이 지하철을 타는 것도 끔찍하게 여긴다.

 그런 클레르에게 이십 시는 삶의 경계이다.






 


이토록 매력적인 여자가 어떻게 해서 매춘을 하게 되었을까를 풀어내는 것이 작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학대받은 여성, 가난한 여성. 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라면 초반의 매력을 감소시킬 뿐이니까. 또 그런 사연을 드러내는 방식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 다니엘을 통해서 비교적 안전하게 마무리를 지었다고 생각된다.

 

 어떤 이들은 자기 삶에 벗어나기 힘든 유령을 지고 살기도 하니까. 그런 점에서 별 무리 없는, 꽤 글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었다.

 





지금 나는 창녀이고 그가 나를 창녀로 대해 주기를 바랐다. 이런 일은 '낮의 클라라'가 '밤의 클라라'의 영토를 잠식하는 문제 그 이상이었다. 나는 깨지기 쉬운 그 미미한 경계를 확립하느라 몇 년의 세월을 바쳤고, 그 경계를 필사적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나의 낮 시간은 밤 시간의 네거티브 필름이었다. 알코올도 없고, 섹스도 없고, 남자들도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내 삶의 두 얼굴과 이어 주는 시간표를 엄격하게 준수할 뿐이었다.

 

나는 확실히 파리에서 가장 엄격한 원칙을 가진 창녀였다. 그리고 그런 원칙들 때문에 마음의 평온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때로는 육신의 안락함과 비슷한 기분이 온몸을 감싸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었다.

 

독서도 기쁨의 또 다른 근원이었다. 독서는 언제나 나를 기쁘게 했다. 책은 나를 야만에서 구해 주었다.

 

나는 내 손님들을 두 부류로 분류하고 있었다. '고전파'와 '규격외파'

규격외파와 일을 하게 되면 어떤 패를 들게 될지 좀더 불확실하다. 섹스에 대한 요구도 때때로 놀랄 만큼 파격적이다.

 

아주 정밀한 삶의 규칙과 윤리의 측면이 더욱 강화되었다. 나는 폭력과 압제가 불시에 내 삶에 다시 얼굴을 들이밀까 봐 두려웠다.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것, 예측할 수 없는 것에 절대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일종의 섹스 공무원이 되어야 했다. 경계표를 세우고 시간을 정해 놓고 일하는 창녀.

 

나는 긴장을 풀고 책 속에 빠져들려고 애쓰면서 날마다 책 한 권씩을 읽었다.

 

나는 내 이름에 애착을 갖고 있었고,오랜 시간 동안 그 이름에 적응되어 있었다. 하지만 부모에게 받은 그 이름으로 계속 불리면서 으스러질 듯한 중압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손쉬운 선택을 했다. 나는 '클라라'가 되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서투르고 역행하는 사랑만큼이나 깊고 오래 지속되었던 그 분리.

 

우리는 저주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우리 두 사람은 저주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저주를 향해 걸어갔던 것이다.

 

벌거벗은 채 그 곳에 있자니 나 자신이 끔찍할 만큼 낯설게 느껴졌다. 비정상. 사실 그것은 야릇한 일이었다. 나는 아주 가까운 곳으로 유배를 떠나온 것 같았다. 조금은 부조리한 일이기도 했다. 자기가 사는 동네의 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과 같은.

 

그 모든 사랑의 절반만으로도 질식해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를 내밀었을 때 그는 "<스패니쉬 아파트먼트> 봤어요?" 라고 물었다.
잊고 있었다.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그는 우연히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게 된 다섯 남녀의 일상, 현대 젊은이들의 심리를 묘사한 작품이라고 <퍼레이드>를 소개하는 카피를 보고 그 영화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에게는 <퍼레이드>를 빌려주고, 나는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를 보기 시작했다.

 

유쾌하고 장난스러워 보이는 편집,
분위기가 딱 맞아 떨어지는 배경음악,
찌질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랑스러운 주인공과 그들의 친구들.

웬디의 양다리 씬이나, 레즈비언 친구가 자비에게 여자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 씬
참으로 골때리고 얄미운 웬디의 남동생 씬 등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이 있지만
마음에 남아 묘하게 자꾸 떠오르는 부분은 여기.


 

이 모든 거리에서 그녀와 함께 있었다.

이렇게 복잡한 거리에.

이곳, 바로 여기에 도착하기 위해.

그녀를 떠나보내기 위해


 

 
 
 
 
 
 
 
 
 




이 길에서 헤어지기 위해서 수많은 길을 함께 걸었던,

종반부의 장면과 Radiohead의 No Suprise. 가슴이 먹먹했다.
나의 이별, 처음 겪는 헤어짐이라는 감정을 처리하는데 서툰 나는
그로인해 내가 발생하는 모든 감정들이 생소해지고 낯설어져서, 명료하게 정리가 안 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결국은 이별을 위한 시간처럼 표현되는 저 장면이 서글펐던 것이다.
그에 대한 감정은 소멸되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끝이 난다는 사실이,
관계에 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속상한 거 였다.

 

게다가 평소에는 그런 식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면, 똑같은 상황을 겪는 여자였다면,
청춘의 방황을 대표하며, 또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재미있어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찌질한 남자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만이 청춘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비에와 같은 행동을 하는 여자에 대해서는 그닥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황하는 '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서 든 생각일지도 모른다.
난 자비에보다 훨씬 더 찌질거리며 방황하고 있는데, 그래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봐주세요. 하고 구걸하고 싶은 건지도. ㅋ

아, 그리고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와 주요한 상황 소재는 비슷하겠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영화 <스패니쉬 아파트먼트>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물론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Radiohead - No Suprise
 
 
A heart that's full up like a landfill
쓰레기장처럼 채워지는 마음
a job that's slowly kills you
너를 서서히 죽이는 업무
bruises that won't heal
치유되지 못할 상처
you look so tired and unhappy
너는 너무나 지치고 불행해 보여
bring down the government
국가는 너를 실망시키지
they don't speak for us
그들은 우릴 대변해 주지 못해
i`ll take a quiet life
난 조용한 삶을 택할거야
a handshake with carbon monoxide
일산화탄소와의 한 번의 악수
no alarms and no surprises
그 어떤 불안이나 놀라움도 없기를
silent silent
고요하기를...고요하기를
 
this is my final fit my final belly ache
이것은 나의 마지막 발작.. 나의 마지막 불평..
with no alarms and no surprises
그 어떤 불안도 놀라움도 없는 채로
please
제발
 
such a pretty house and such a pretty garden
그토록 아름다운 집과 아름다운 정원
no alarms and no surprises
어떤 불안도 놀라움도 없기를
please
제발
 
 

 

 





애인씨와의 싸움
우리 사이의 좋은 감정과는 별개로 싸움은 상황으로 인해 일어나게 된다.
이번 싸움은 우리 둘의 상황이 아닌, 애인씨의 상황에 대한 나의 대응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믿음과 걱정과 도움의 경계를 잘 잡지 못했기 때문에 애인씨에게 상처를 주었다.

애인씨는 나의 표현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보다는 그저 일차적으로 반응하여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나는 나의 애정의 과도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해 받을 수 없는 슬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우리 둘 사이에 반복되는 패턴으로

결국 생각하더라도 어떠한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였다.

내 행동을 바꾸고, 내 마음을 달리 먹는 것.

이해에 대한 나의 좁은 폭을 넓히는 것밖에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애같이 굴지 않게 되고 있구나 하고 만족감을 느끼더라도
가끔씩 이렇게 폭발하고 만다.
이해 받고 싶어하는 애처로운 몸짓. 구제할 수 없는 애정 결핍.

 

 

냉정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굳이 내가 내 이해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며,

나를 아프게 한 이 사람의 행동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과연 내게 좋은 일일까?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태도를 쉽게 바꾸지는 못할 텐데.

 

 

 

- 나는 그를 비난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우선 순위를 정하고 싶었다. 변명 같은 걸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결국 그 일로 제일 속상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하지만, 그에게 감정적으로 동조되어 있는 나야 말로 너무나도 마음 아프고 화가 났었다. 나의 화를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 들인 그가 야속했다. 그런 것이 우리 사이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언어가, 나의 말투가 그에게 비난조로 들렸다면, 그리고 그것을 물어보는 타이밍의 문제라면 내가 잘못한 것이다. 나 역시 감정에 휘말려 버렸기 때문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말 자체가 본질의 문제를 벗어나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것은 내게 슬픈 일이었다.

 

 

 

우리는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비단 우리 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나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해주고, 그 사랑을 표현할 줄 알며 나에게 지극정성이며 나밖에 모르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

 

 

각 개인은 평행선이다. 절대 만날 수도 겹쳐질 수도 없는 평행선.

그러나 나는 그와 간격이 넓지 않는 평행선이고 싶다.

 

평행선을 좁히는 것.

 

 

 

 

나의 부질없는 이해에 냉소적인 태도가 생겨나려 할 즈음에

무릎팍 도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마트에 뭘 사러 갔다가 계산을 기다리며 틀어놓은 TV에서)

 

끊임없이 져주고 끊임없이 이해하는 것.

그럴 자신이 없으면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이미연의 말에

 

사랑이라면,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내 사랑에 냉소를 보내선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솔로들에게는 염장 드라마
커플들에게는 표절 드라마

'우리 하는 거 왜 똑같이 따라 해?' 라고 말해주고 싶은 
소소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애 드라마 커피 프린스



 

사이즈가 딱 맞는 포옹

품 안에 쏘옥 들어가는 포옹

조금이라도 빈틈 생길까 꽈악 포개서 안는 포옹

마주 앉으면 자동으로 달라붙는 발


주인은 절대 세게 깨물지 않는 강아지처럼,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깨물듯이 덤벼 들어도 그건 귀여운 장난

윤은혜만큼 작은 얼굴은 아니더라도 공유 손보단 크고 믿음직스러운 애인씨의 손은 내 얼굴을 가리기 충분!


오랜만에 만나면 항상 예쁜 눈, 예쁜 코, 예쁜 입 확인하지.
가끔 삐진 애인씨는 저렇게 무섭고 무표정한 척 있지만, 달래달라고 그러는 거 다 알고 있는 걸


















 




 얼른 와요, 보고 싶어요. 자기!
 
 이런 짧은 답문만으로도 행복감에 젖어 들수 있는 게 여자의 마음.





 

 마음을 담아 쪽~ 키스를 날릴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말뿐인 달콤이라면 ?




Girl들의 수다를 포착해내는 것에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쿠엔틴 타란티노! 
<데쓰 프루프>라는 영화 자체 내러티브와는 큰 상관이 없지만, 소소하게 포착한 SMS 씬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자동차도 짓이겨지는 아름다운 Girl의 몸을 보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에서든 사랑 요소를 찾아내어 동감할 것을 찾아내는 재능이 있는 나로서는 저런 장면들이 '맞아. 저 기분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애인씨가 오지 않는다고 어떤 사정인지도 모르고 '강아지 같은 놈아'에 버금가는 욕을 써 보내는 건 그닥 현명해 보이지 않는군!' 이러면서 영화를 보게 되는 것이다.



 

- 락이 키스는 잘 하던?
- 죽여주던데, 입술이 부드럽고, 손끝도 매끄러워
- 난 부드러운 입술이 좋더라




- 걔는 덩치가 커서, 날 빙빙 돌리더라 그러니까 내가 등을 지게 됐고
걔의 커다란 손을 내 목에 올리더니 내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상체를 구부려서 뒤에서 키스해주더라
- 정말 섹시하게 들린다!
- 섹시했어





 

정말이지 저런 섹시한 경험을 하고 나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공감해주고, 그것의 즐거움을 아는 친구들이라면 수다로 그때의 기분을 되살리며
행복 호르몬을 다시 온 몸에 흐르도록 하는 것도 짜릿한 쾌감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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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 시떼루노?

키스.
 



아무렇지 않게
명확하게 대답해서
딱히 거절할 이유도 못찾고
키스해 버리고 말았다네.


써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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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시작할때는 두려움과 희망이 뒤엉켜 아프고

시작한 후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알고 싶어서 부대끼고

사랑이 끝날땐 그 끝이 같지 않아서 상처받는다.

사랑때문에 달콤한 것은 언제일까?

......

그리하여 사랑은 늘 사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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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품에 안겨서 자는 게 좋아.
네가 팔베개를 해줄 때
머리가 무거울까봐 잘 베지 못하면
안 무겁다고, 하나도 무겁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도 좋아.


168cm의 어깨가 발달한 여자애지만 날 꼭 안아주면서
'쪼그만 게' 라고 말해주는 게 좋아.
'아휴 이렇게 작은 게' 라고 말해줄 때
너의 품 안에서 나는 은연 중의 컴플렉스가 조금씩 해소되어 가
(나를 한 품에 넣어줄 남자는 없을거다 라는 몹쓸 - 이게 과대망상인 건 알지만 불안한 걸)

 

 





내 손목이 너무 가늘고, 내 팔뚝이 자기 손에 다 잡힌다고 신기해하며
내가 팔베개를 펴며 여기에 누워서 자라고 할 때
팔이 부러질 것 같다고 말해주는 것도 좋아.


내 품에 안긴 당신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 아이를 안고 있는 것 같아.
엄마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내가 보살펴주고 아껴줘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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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였다면,
쉽게 포기할 수 있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바보처럼 속마음과 다르게 늘 그에게 끝을 얘기하고, 변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곤 했다. 끝이 보였던 관계 앞에선 실낱 같은 희망에 매달려서 끝나지 않을 거라고  나 자신에게 어리석은 주문을 걸어 외웠으면서 말이다 또 다시 헛된 마음 때문에 다치고 싶지 않다는 자기보호막. 내 자신을 둘러싼 방패와 갑옷의 무게에 짓눌려서 결국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언젠간 사랑이 식을 테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변하고 마는 거니까
언젠가는 내가 귀찮아지는 날이 올 테니까
 
 
그런 말들이 주문처럼 내게 되돌아왔다. 실은 한번도, 정말 그를 만나서 한번도 끝을 예감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누굴 만나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와의 만남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들었다는 건 내 스스로도 놀랄 정도여서 한 친구에게 이런 벅찬 마음을 몰래 자랑하기도 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관계 막연하지만 내년 이맘때도 함께인 모습이 상상되는 거 왠지 따로 떨어져있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거 이건 실로 대단한 경험이었는데 그런 말 대신 전혀 사랑스럽지 않고 저주스러운 말만 내뱉었다.
 

 

 


요즘 요시모토 바나나의 <티티새>를 읽고 있다. 진작에 읽었어야 했다.


 

사랑이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빠져 있는 거야.
나이가 몇이든. 그러나, 끝이 보이는 사랑하고 끝이 안보이는 사랑은 전혀 다르지.
그건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 수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즉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야.


 

- 지금까지는, 뭐가 어떻게 되든, 그러니까 상대방이 눈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도,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가 손을 잡게 해달라느니 만지게 해달라느니 해도.
뭐랄까....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이었어요.
강 건너 불이 났는데, 이쪽 어두운 강가에서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언제 불이 꺼질지 뻔히 보이니까, 졸리고 따분했거든요.
그런 건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니까요.
사람들은 연애에서 뭘 추구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 나이에.

- 그야 그렇지.
사람이란, 자기가 준 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는 법이니까요.

-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그 안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곁에 개가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이사를 하기 때문인지,
아무튼.
하지만 쿄이치는 달라요.
몇 번을 만나도 싫증이 나지 않고,
얼굴을 보면 손에 든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발라주고 싶을 정도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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