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정도면 끝날 줄 알았던 야구는 5시간을 넘겼다. 올해 처음 보는 야구 중계였다. 동점 상황에서도 6회 말부터는 조금씩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야구는 아무래도 집중해서 보기는 힘든 스포츠. 너무 애달프게 하는 것도 심장에 좋지 않은 느낌.
될듯 될듯 안 되는 삼성에게 감정이입이 지나치게 되어버렸다.

적당한 설명을 영리하게 이해한다고 칭찬도 들었고 축구보다 수를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어 감독이나 선수 욕을 확실히 할 수 있다는 그런 점에서는 흥미로웠지만 챙겨보게 될 스포츠는 아니라는 게 좀더 확실해졌다. 덧붙여 섹스를 하면서 볼 만한 스포츠는 아니라는 것도, 섹스와 잘 어울리는 건 아무래도 축구! 그 생각도 좀 더 견고해졌다. 







금요일 밤, 야구를 볼 생각은 없었다. 그날은 감기가 지독하게 걸려 밤새 아팠다가 병원에 다녀와 골골골거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약을 먹고 한 시간 정도 푹 잔 덕분에 열은 좀 내렸고 콧물이 흘러내리던 증상도 완화되었다. 혼자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래도 상관없었다. 혼자서 병치레를 하는 건 그리 힘들고 서글픈 일도 아니었다. 다만 감기엔 약보다 섹스가 더 좋은 치유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No라고 대답했을 제안에 그래. 좋아. 야구 보자라고 답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것이나 내가 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없었다. 야구를 같이 보고 싶다라는 제안이 일상적인 것을 나와 함께 하고 싶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야구를 보면서 섹스를 하고 싶다라는 다른 판타지의 충족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섹스가 끝난 뒤 모로누워 뒹굴거리며 시덥잖은 농담 같은 걸 했다. 기억도 나지 않을 우스갯소리 혹은 빈정거리는 말을 주고 받았다. 삼성이 몇 번이나 기회를 놓치면서 욱하고 짜증나는 마음에 한 번 더 했을 뿐이었다. 

다섯 시간 정도 같이 있으니 그를 빨리 보내고 싶었다. 혼자서 쉬고 싶었다. 내가 뭐 해줄까? 라고 묻는 그에게 집에 가 라고 답했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가 상처받지 않을 거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서로의 방식에 길들여질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었다. 그가 가고 나서 삼성의 실점이 마구마구 이어졌다. 다른 팀에 비해 삼성을 응원하니 별로 한이 없겠다라고 물었을 때 지금이야 그렇지만 간절히 우승하길 원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삼성은 실망감만 안겨주었다고 말하며 옷을 챙겨입고 나간 그에게 실점 스코어를 문자로 내주었다. 갑자기 얄미운 짓만 골라서 했다. 유치할 정도로 못된 짓을 마구 했다. 아마도 이게 나의 되먹지 못한 본성. 그에게는 사악하고 짓궂은 내가 폭발하고 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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