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고 나와 온몸에 바디로션을 충분하고 꼼꼼하게 바르면서 생각했다. 평생 여자이고 싶다. 결혼을 해서도, 아이가 태어나도, 섹스리스한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나의 배우자도 평생 남자였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성적인 존재인 동시에 좋은 친구였으면 좋겠다. 함께 밥을 먹고. 공유하는 화제가 두어 개 정도 있고, 서로의 일과를 무심하지 않게 들어줄 수 있는. 뭐 대단하지 않더라도, 대단히 행복해 보이지 않더라도, 섹스가 끝난 뒤 침대에선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지 않고 등을 맞대고 잠이 든다고 하더라도.



내게 결혼이란 나의 첫번째 독자를 가지는 일이라 생각한다. 냉철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비평가. 물론 우정의 영역에서 이미 그런 친구를 가졌지만 새벽에 자다깨서 책상에 앉아도 의아해하지 않을 남편을 가지고 싶다. 둘이 마주 앉아 각자의 일을 하며 - 생각의 정리든 세계의 창조이든. 뭔가 쓰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 뿌듯함과 절망감을 알고 섣불리 위로하지 아니하되, 기꺼이 서로의 뮤즈가 되는 사이가 되는 것.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선함을 유지하되 서로의 악함을 도닥여주는 것.



결혼하면 남편을 내편, 내편씨라고 부르고 싶은 로망이 있다. 이봐요. 내편씨. 저녁엔 산토리 위스키 하이볼에 갓 잡은 문어로 숙회나 만들어 먹을래요? 샐러드에는 레몬갈릭소스를 뿌립시다. 식사를 하면서 내편씨랑 처음 봤던 영화 다시 볼까요? 아님 냇킹콜의 음악을 틀어도 될까요? 내편씨이! 이런 대사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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