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것들은 언제나 우리의 눈길을 잡는다. 점잖은 척, 아닌 척해도 곁눈질도 힐끔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야한 것들은 우리를 흥분시키고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며 온몸에 생동감을 넘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내놓고 야해지기란 쉽지 않다.

성인영화를 보는 일. 방문을 걸어 잠그고 스피커 대신 이어폰을 꽂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누가 듣지도 보지도 않는데, 죄의식을 가슴 한편으로 느낀다. 게다가 소위 야동, 포르노 영화들은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그 행위는 행위를 나누는 두 사람의 쾌락보다는 남성의 욕구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보니 랜덤으로 다운받은 동영상이 여성에게는 불쾌감과 거부감을 주고 성인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그런 영화를 보며 자란 남성들은 그런 행위들이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착각하며, 부당한 요구를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당당하게 하곤 한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야한 영화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여성이 수치감을 느끼지 않는 동시에 즐겁게 볼 수 있는 야동을 찾아보려는 마음으로 한동안 수없이 많은 야동을 3배속으로 보며 검색을 했다. 포기하는 게 나을까? 그런 생각하던 때에 ‘반짝’하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핑크영화제! 그렇다. 우리에게는 ‘핑크영화제’가 있다.

2010년 올해로 4회째를 맞는 핑크영화제가 11월5일 개최된다. 핑크영화는 일본 독립영화의 한 장르로 제작비 300만엔, 촬영기간 3~5일의 초저예산 소규모 영화로, 60분 정도의 러닝타임 속에 베드신 4~5회가 들어가야 하는 룰을 지키며 만든 영화이다.

핑크영화제는 수없이 양산되는 핑크영화 중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성적 쾌락을 탐색해 나가고 성적 주체성을 가진 여성으로 진화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유쾌하고 공감이 되는 성인 영화들로 채운 영화제이다.

핑크영화 속에는 남성의 기형적 욕망에 맞춰 여성의 입에 사정을 하고 정액을 먹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것 같은 장면들이 비일비재하게 등장하지는 않는다. 가슴 사이즈가 G컵, H컵이면서 허리는 가늘고 팔이 낭창낭창한 비현실적인 몸매를 가진 배우도 없다. 약간은 통통해서 튀어나온 배가 귀여워 보이는 현실적인 여성들이 배우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핑크영화제는 삶에 부족한 야함을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타인의 섹스를 훔쳐보기 식으로 관람하게 되는 야동과는 달리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다’하며 감정이입을 하며 볼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주어지고, 달뜬 마음이 되기에 결코 빈약하지 않는 정사신이 어우러져 있기에 때문이다.

골방에서 불을 꺼놓고 은밀하고 몰래 즐기는 대신 극장에서 커다란 화면으로 당당하게 즐기는 성인영화. 상상만 해도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을 곁눈질로 관찰해보기도 하고 내심 오늘 밤엔 이 영화처럼 해보겠다는 생각을 품고 돌아갈지도 모른다.

올해 핑크영화제는 작년보다 더 많은 날짜를 할애해 남성 관객의 입장을 허용하였기에 남자친구, 남편과 함께 핑크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 작년에도 혼자 보러왔던 중년여성들이 남편과 다시 한 번 영화제를 찾고, 젊은 커플들의 호응도 좋았다.

비록 규모는 아담하지만 비타민처럼 결핍 되서는 안 될 ‘야함’을 우리 삶에 채워주는 핑크영화제를 통해 여성의 내밀한 욕망, 여성이 원하는 섹스에 대해 높은 이해력을 갖춘 남성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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