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였다면,
쉽게 포기할 수 있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바보처럼 속마음과 다르게 늘 그에게 끝을 얘기하고, 변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곤 했다. 끝이 보였던 관계 앞에선 실낱 같은 희망에 매달려서 끝나지 않을 거라고  나 자신에게 어리석은 주문을 걸어 외웠으면서 말이다 또 다시 헛된 마음 때문에 다치고 싶지 않다는 자기보호막. 내 자신을 둘러싼 방패와 갑옷의 무게에 짓눌려서 결국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언젠간 사랑이 식을 테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변하고 마는 거니까
언젠가는 내가 귀찮아지는 날이 올 테니까
 
 
그런 말들이 주문처럼 내게 되돌아왔다. 실은 한번도, 정말 그를 만나서 한번도 끝을 예감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누굴 만나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와의 만남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들었다는 건 내 스스로도 놀랄 정도여서 한 친구에게 이런 벅찬 마음을 몰래 자랑하기도 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관계 막연하지만 내년 이맘때도 함께인 모습이 상상되는 거 왠지 따로 떨어져있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거 이건 실로 대단한 경험이었는데 그런 말 대신 전혀 사랑스럽지 않고 저주스러운 말만 내뱉었다.
 

 

 


요즘 요시모토 바나나의 <티티새>를 읽고 있다. 진작에 읽었어야 했다.


 

사랑이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빠져 있는 거야.
나이가 몇이든. 그러나, 끝이 보이는 사랑하고 끝이 안보이는 사랑은 전혀 다르지.
그건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 수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즉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야.


 

- 지금까지는, 뭐가 어떻게 되든, 그러니까 상대방이 눈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도,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가 손을 잡게 해달라느니 만지게 해달라느니 해도.
뭐랄까....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이었어요.
강 건너 불이 났는데, 이쪽 어두운 강가에서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언제 불이 꺼질지 뻔히 보이니까, 졸리고 따분했거든요.
그런 건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니까요.
사람들은 연애에서 뭘 추구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 나이에.

- 그야 그렇지.
사람이란, 자기가 준 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는 법이니까요.

-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그 안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곁에 개가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이사를 하기 때문인지,
아무튼.
하지만 쿄이치는 달라요.
몇 번을 만나도 싫증이 나지 않고,
얼굴을 보면 손에 든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발라주고 싶을 정도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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