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짐승!" 90년대 드라마에선 여주인공이 자신에게 치근거리는 남자에게 뺨을 올려붙이며 내뱉던 단어가, 지금에 와선 정 반대의 의미가 되었다. 초콜릿 복근을 기본 옵션으로 한 야성적인 섹시미를 가진 남자를 뜻하게 되었으니, 짐승이라는 단어만큼 그 지위가 격상한 단어가 또 있을까? 이제 남자 연예인들에게 '짐승'은 '꿀'이라는 수식어만큼이나 달콤하게 원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노출이 등장하지 않는 요리 드라마의 보도 자료에도 남자배우들이 식스팩을 가진 '짐승남'이라고 홍보한다.

이 시대는 여자들로 하여금 짐승남을 욕망하게 만들고, 남자들은 초콜릿 복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진짜 짐승남을 갖는 것도,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드라마 '추노' 속에 큰 주모는 왜 최장군의 목욕씬을 보며 하악거리지만, 왜 정작 그를 제대로 쓰러트리진 못했을까? 그것은 큰 주모가 최장군을 짐승남으로 만드는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 반대로 혜원은 비록 드라마 속에선 민폐 108종의 된장 내숭 언년이지만 밋밋하고 허약해보이던 양반집 도령을 짐승 중의 짐승으로 만들어낸 조련사이며, 그 짐승을 사로잡고 있다.

남자가 짐승이 되기 위해서는 복근 운동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초콜릿 복근은 자기 여자를 지켜내기 위한 과정 중에 도출된 산물일 뿐이다. 남자를 짐승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여자', 너무나 사랑하기에 반드시 지켜내야 할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기에 짐승으로서의 매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대길이 8년 동안 애타게 언년을 찾지 않았다면, 최장군이나 왕손이에 비해 더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 백만 대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죽으면서도 '나의 왕비, 나의 아내, 나의 사랑'이라는 세 마디를 내뱉으며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감각적이면서도 잔인한 화면으로 가득했던 그 영화가 여심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 2010년 새로 시작한 미드 '스파르타쿠스'의 '그나마 노출이 덜한' 장면 중에서


또 한 편의 드라마가 있다. 방송사 Starz에서 제작해서 현재 미국에서 방영 중인 역사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기원전 로마공화국 시절, 검투사로 전락한 트라키아인의 노예반란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TV판 '300'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상이 화려하고, 매회 두 번 이상 섹스 장면을 포함하고 있어 성인에게 있어서는 꽤나 즐거운 눈요기가 될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도 짐승남이 즐비하다. 헐벗은 남자들의 몸은 무척이나 훌륭하다. 이 드라마의 미덕이라면 여주인공들도 벗기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길들여지지 않을 야생의 짐승남인 주인공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아내 수라의 섹스 장면은 옥시토신과 아드레날린이 마구 뿜어져 나올 정도로 에로틱하다. 저런 표정과 저런 동작으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드라마에서도 스파르타쿠스는 노예로 팔려간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라는 로맨틱한 이유로 검투사가 되어 짐승남의 매력을 뿜어낸다.

타고나길 남자다운 근사한 남자들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짐승이 되는 남자들을 우리는 진짜 짐승남이라고 부른다. 여자들이 욕망하는 짐승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브라운관 속의 짐승남은 허상이며 환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짐승이 되는 남자를 바라지만 그 사랑 자체도 쉽게 변하는 세상 속에 살기 때문이다. 변치 않을 사랑을 받는 여자란 1%도 안 될 것이다.

현실에서 '남성호르몬 가득 차있음!' 그걸 온 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근육질의 멋진 남자가 정령 한 여자에게 만족하리라 믿을 수 있을까? 남자를 진짜 짐승으로 만드는 여자가 내가 되길 바라겠지만 그것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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