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타자만 잘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스포트라이트는 홈런 친 타자가 받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야구를 보기 시작하면서 야구는 투수의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거죠.”

S는 스무 살 때부터 술자리에 남자가 한 명이라도 끼게 되면, 시시각각 돌발적으로 주제가 바뀌는 여자들의 수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를 위해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나 자동차, 심지어 아직 출시되지 않은 IT제품에 대한 화제를 슬쩍 던지곤 했다.  그러면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을 잡은 것마냥 S가 이끄는 대화의 세계로 따라 들어오곤 했다. 구원 받은 그는 S처럼 말이 통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감복하고 그것은 곧 호감으로 발전되곤 했다.

S의 주변에는 항상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S는 그 인기를 누리면서도 어느 누구의 고백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S는 야망이 큰 여자였다. 복잡한 화살표가 얽혀 있는 캠퍼스 내에서 연애할 마음은 없었다.



S는 졸업 하자마자 야구 동호회에 가입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은 여자 신입이라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S는 눈에 띄지 않게 관찰자 모드를 유지했다. 대신 카페에 올라온 회원 소개란을 꼼꼼하게 읽었고 사진을 찾아보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괜찮은 남자 리스트를 뽑아놓고, 야구 관람 정모 때 그들이 나오는지 확인했다.

몇 번의 정모 활동 이후 S는 한 명의 남자를 집중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잠실 근처에 자신 소유의 한의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자들이 혹할 만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야구광인 덕분에 간만 보여주다 공식적인 연애는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가여운 남자였다.

S는 웬만한 남자 못지 않게 야구 룰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도 너만큼 잘 알고 있다' 작전은 쓰지 않기로 한다. '야구 아는 여자' 순간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다 알고 있다면 야구를 관람하면서 대화할 일 없이 그냥 경기만 보게 될 게 뻔했다. S는 야구 초보인 듯 그와 함께 야구 관람을 하며 룰을 하나하나 배우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에게 그녀보다 우월한 지위를 줌으로써 그녀를 보살펴주고 이끌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이다.

"다음 타자는 번트를 노릴지도 모르겠네요." S의 적절한 상황 판단에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까 번트·볼넷 그리고 데드볼 설명해주셨잖아요. 지금 노아웃 상태에 두 명이 출루해있으니 번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야구 관람 도중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재빠르게 응용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준 S. 가르친 보람을 느끼게 하고,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호감도를 급상승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진 대사였다.



지난 14일은 화이트데이거나 일요일이기 이전에 잠실구장에서 두산과 LG의 시범경기가 열린 날이기도 했다. 대략 1만 8000명의 관중이 외야석까지 꽉 들어차서 역대 시범경기 중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그리고 꽤 많은 커플들이 야구를 즐기고 있었다. 그 속에는 결혼 3년차인 S와 한의사 남편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전략적 접근이긴 했지만 그 둘은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사이좋은 커플이었다.


실제 연인 사이인 배우 윤진서와 야구선수 이택근. 게스 언더웨어의 “FANTA-G” 프로모션 화보 컷

 

 

여성이 대접받고자 하는 방식의 데이트들.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기, 서울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시기, 근사한 자동차를 타고 한적한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 하기. 그렇게 분위기 잡고 앉아있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남자는 고삐에 묶인 송아지마냥 답답증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그를 위해서 신상 구두와 연예인 가십에서 벗어나 남성이 좋아할만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데이트도 그가 좋아할만한 코스로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PC방의 커플 좌석이나 당구장에서의 데이트. 배려가 넘치고 센스 있는 여자로 보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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