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몇 번이나?” 혹은 “한 연애를 얼마나 오래 했나?” 나와 데이트 중인 남자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그 숫자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옛 연애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자 함은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인상을 주면 열에 다섯은 자신의 과거사를 재잘재잘 늘어놓는다. 심지어 “그 여자가 왜 그랬던 것 같아요?”라고 묻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여자를 잘 모르는 순진한 남자라서 이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자신의 과거사를 상담 받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무신경하다 못해 배려심이 없는 남자? 이도저도 아니면 내가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을 에둘러서 하는 것인가?

 

차라리 마지막의 경우라면 ‘친구하자’로 끝내면 간단한 문제이다. 나에 대한 배려도 없고 무신경한 남자라서 그런 것이라면 옛 애인에 대한 이야기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실망감을 안겨주는 부분이 생기게 될 테니 삼진아웃 시켜버리면 그만이다.

 

나에 대한 호감도 표시하고, 예의도 바르고 그래서 나도 마음이 살짝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서 나의 질문에 그런 식의 태도를 보이면 ‘이건 뭐하자는 거지?’ 정말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런 나의 상황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나 진배없다고 말한다. 지난 과거에 대해 물어봐야 재앙만 일어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그런 질문을 통해서 나에게 보여준 매너가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이전 연애를 통해 조련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만남의 기간과 헤어진 시간의 경과를 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적절한 타이밍에 나를 만난 것인지, 아니면 그가 이별을 몸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 역시 흘러가는 역할인지도 판단할 수 있다.

 

이십대 초반에 ‘아무 것도 몰라요.’라는 식으로 순진무구한 모드를 가동시킬 시기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 이 나이가 되도록 연애 한 번 안 해봤다는 게 더욱 흠이 될 이 시점이기에 연애 유무와 횟수 그리고 기간에 대한 간단한 질문이 독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남자가 몇 명의 여자와 잤으며, 그 여자와는 몇 번이나 잤을까 하는 것을 추측하기 위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걸 듣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 여자와 어떻게 사랑에 빠졌고, 어떻게 헤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궁금하지 않다. 다만 나 이전의 역사는 그 사람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바탕이 되는 것이기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본인의 신념으로 지키는 혼전순결이 아니라면 지금 시대에 그다지 의미가 없는 개념이다. 현재 그의 옆자리에 있는 내가 과거의 그녀들을 질투할 마음도 없고, 그가 바꿀 수 없는 내 과거에 대해 긍긍 전전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부디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앞으로 수치적 진실만 밝혀주길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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