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이라는 그녀석들>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하는가? 이 문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답을 하게 된다. 나의 이성 친구를 경계하는 남자친구에게는 “우린 친구 사이야. 걱정하지 마.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라고 말하기 마련이지만 애인이 구여친과 여전히 친구로 지내면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어? 그런 관계 불쾌해!”라고 화가 나기 마련이다.


남녀 사이에 우정이 가능 하려면 우정의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 10년 이상 알고 지내서 서로의 연애사도 꿰고 있고 성적 농담이 자유로워진 친구끼리 “야, 친구가 발정 나서 헉헉거릴 땐 섹스도 할 수 있는 게 좋은 친구 사이 아냐?”라는 농담을 던지곤 깔깔거리기도 한다지만 남녀 사이의 우정에서는 스킨십의 범위는 민감한 주제가 될 것이다. 여자친구들끼리 손도 잡고 안아주기도 하니까 그 정도는 문제 없을까? 횟수나 빈도는? 그런데 그런 스킨십을 하더라도 서로가 전혀 이성적인 끌림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정이라는 관계 안전망 안에서 분위기의 미묘함을 즐긴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연인 사이였던 이들이 연애 종결 후에 친구로 관계를 전환했을 때이다. ‘남녀 사이에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어?’라고 반문할 때 가장 짙은 의혹과 혐의의 시선을 받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알만큼 알지 않는가? 몸을 섞은 경험이 있는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기류. 그 둘만이 아는 느낌들. 그걸 무시하고 우정을 유지하는 자제력? 혹은 시원한 성격에 감탄하며 친구라는 걸 믿어줘야 하는 것일까?


각자 싱글인 상태라면 이성과 친구를 하든 사랑을 하든 그건 그 두 사람이 친밀해지는 과정에서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뿐이다. 꼬꼬마 시절부터 알고 지내 도무지 이성으로 느낄 구석이 하나도 없는 그런 친구가 아니라면 친구로 시작한 이성은 얼마든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두 사람이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더라도 친구의 영역에서 호감을 쌓아나가며 연인으로 발전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남녀 간의 우정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한창 연애 중인 상대에게 호감을 품게 되었지만 친구로 머물면서 둘 사이의 균열을 바라며 인내심 많은 사냥꾼처럼 기회를 노리거나, 친구로 잘 지내다가 한쪽이 먼저 상대를 이성으로 인식하게 되었지만 섣불리 고백했다가 연인이 되기는커녕 어색해져서 친구로도 지내지 못할까 봐 용기내지 못하는 관계도 있다.


그런데 상처만 남은 연애를 막 끝내고 당분간 깊은 관계를 기피하는 상태에서 그럼에도 육체적인 쾌락, 타인의 관심과 친절은 즐기고픈 이들에게 친구로 지내자는 말은 적당히 관계를 봉합하고 거리를 유지하려는 비겁한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두어 연인인 듯 아닌 듯 우정의 호의를 이용하는 관계도 있다. 혹은 그 친구와는 연인으로 관계를 발전시킬 마음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의 분위기, 이를테면 평소와는 다르게 이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옷차림 더하기 혈중 알코올 농도의 짙음이 만들어낸 충동적 하룻밤 이후 애매한 관계들이,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우정이라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경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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