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를 내밀었을 때 그는 "<스패니쉬 아파트먼트> 봤어요?" 라고 물었다.
잊고 있었다.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그는 우연히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게 된 다섯 남녀의 일상, 현대 젊은이들의 심리를 묘사한 작품이라고 <퍼레이드>를 소개하는 카피를 보고 그 영화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에게는 <퍼레이드>를 빌려주고, 나는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를 보기 시작했다.

 

유쾌하고 장난스러워 보이는 편집,
분위기가 딱 맞아 떨어지는 배경음악,
찌질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랑스러운 주인공과 그들의 친구들.

웬디의 양다리 씬이나, 레즈비언 친구가 자비에게 여자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 씬
참으로 골때리고 얄미운 웬디의 남동생 씬 등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이 있지만
마음에 남아 묘하게 자꾸 떠오르는 부분은 여기.


 

이 모든 거리에서 그녀와 함께 있었다.

이렇게 복잡한 거리에.

이곳, 바로 여기에 도착하기 위해.

그녀를 떠나보내기 위해


 

 
 
 
 
 
 
 
 
 




이 길에서 헤어지기 위해서 수많은 길을 함께 걸었던,

종반부의 장면과 Radiohead의 No Suprise. 가슴이 먹먹했다.
나의 이별, 처음 겪는 헤어짐이라는 감정을 처리하는데 서툰 나는
그로인해 내가 발생하는 모든 감정들이 생소해지고 낯설어져서, 명료하게 정리가 안 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결국은 이별을 위한 시간처럼 표현되는 저 장면이 서글펐던 것이다.
그에 대한 감정은 소멸되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끝이 난다는 사실이,
관계에 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속상한 거 였다.

 

게다가 평소에는 그런 식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면, 똑같은 상황을 겪는 여자였다면,
청춘의 방황을 대표하며, 또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재미있어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찌질한 남자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만이 청춘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비에와 같은 행동을 하는 여자에 대해서는 그닥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황하는 '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서 든 생각일지도 모른다.
난 자비에보다 훨씬 더 찌질거리며 방황하고 있는데, 그래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봐주세요. 하고 구걸하고 싶은 건지도. ㅋ

아, 그리고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와 주요한 상황 소재는 비슷하겠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영화 <스패니쉬 아파트먼트>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물론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Radiohead - No Suprise
 
 
A heart that's full up like a landfill
쓰레기장처럼 채워지는 마음
a job that's slowly kills you
너를 서서히 죽이는 업무
bruises that won't heal
치유되지 못할 상처
you look so tired and unhappy
너는 너무나 지치고 불행해 보여
bring down the government
국가는 너를 실망시키지
they don't speak for us
그들은 우릴 대변해 주지 못해
i`ll take a quiet life
난 조용한 삶을 택할거야
a handshake with carbon monoxide
일산화탄소와의 한 번의 악수
no alarms and no surprises
그 어떤 불안이나 놀라움도 없기를
silent silent
고요하기를...고요하기를
 
this is my final fit my final belly ache
이것은 나의 마지막 발작.. 나의 마지막 불평..
with no alarms and no surprises
그 어떤 불안도 놀라움도 없는 채로
please
제발
 
such a pretty house and such a pretty garden
그토록 아름다운 집과 아름다운 정원
no alarms and no surprises
어떤 불안도 놀라움도 없기를
please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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