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다닐 때 나는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책을 읽으러 가는 건 아니었고 서가를 천천히 걸어 다니며 어떤 책이 어디에 꽂혀있는지 눈에 익히는 걸 좋아했다. 가장 자주 찾았던 서가는 800번 대의 문학. 그 책장이 지겨워질 무렵에 다른 주제의 서가도 어슬렁거리게 되었다.

성과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한 서가의 구석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제목이 한자로 된 고풍스러워 보이는 책이었다. 어렵지 않은 한자. 봄춘 春, 그림화 畵. ‘한국의 춘화’라는 책이었다.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풍속화 중에 성에 대한 그림을 묶어 놓은 책이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춘화를 본 적이 없었기에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우선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이 없나를 확인했다. 그런 뒤 조심스럽게 책장에서 그 책을 꺼내들었다.

‘에~ 이런 거 였어?’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은 아주 단아했다. 봄기운 물씬 풍기는 마당이 그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림 왼편 상단에는 대나무 발을 쳐놓은 방문이 보였다. 어렴풋하게나마 사람의 형체라도 나타나있었다면 남녀가 포개져있나 보다 할 텐데 그런 친절함은 엿보이지 않았다. 단지 방 문 앞 디딤돌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비단 신발 두 켤레로 모든 것을 추측해야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그림은 굉장히 노골적이었다. 나는 그저 남녀가 서로를 희롱하며 유혹하는 야한 그림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스무 살의 나는 아직 포르노그래피를 제대로 경험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야하다는 건 남녀가 키스한 뒤 침대에 눕고 화면이 어두워진 뒤 다음 날이 되는 정도였다. 남녀의 성기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성적 결합의 순간을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해놓은 춘화. 그게 내가 남자의 성기를 처음으로 보게 된 순간이었다.

상상 이상의 수위를 가진 그림에 나는 놀랐다. 손쉽게 포르노그래피를 접할 수 있는 세대이며, 동영상이 즐비한 이 시대에 조선 후기에 그려진 이차원의 단순한 춘화가 내 아랫배에 몽글한 느낌을 주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포르노그래피로써 손색없는 주제들의 향연이었다. 다양한 체위는 물론이거니와 성행위를 몰래 훔쳐보다가 흥분해서 자위를 하는 모습이라든가, 쓰리섬과 그룹 섹스도 그림의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의자를 사용한 섹스나 우물가에서 이뤄지는 후배위까지 거침없는 그림들이 펼쳐진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춘화는 특유의 소박함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자연 경치와 어우러진 야외의 섹스에서는 운치가 느껴졌다. 사람과 자연이 음양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건강하고 편안함을 주었다. 혜원 신윤복의 그림은 남녀 간에 직접적인 성행위가 없는 그림에서조차 에로틱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남편을 잃은 과부가 야심한 밤에 춘화집을 보고 있는 그림은 여성의 욕망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섬세함이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색채가 화려한 정재 최우석의 그림은 다른 두 화가의 그림보다 조야하고 품격 면에서 밀리지만 그래서인지 좀 더 야하고 강하게 느껴졌다.




지금에 와서 제일 야한 그림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제일 첫 번째 장에 나온 그림을 선택할 것이다.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그림이라고 해야할까나. 지난 주 내내 이른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꽃샘추위가 몇 번 지나가야 완연한 봄이 찾아오겠지만, 춘화 한 폭으로 우리네 밤에 먼저 봄을 피어오르게 만드는 건 어떨까? 춘화는 꽤 괜찮은 흥분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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