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이 신선했다. 창녀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퇴폐적이거나 육체적 쾌락에 몰두하여 자신을 내팽개쳐버리고 마는 그런 여자의 이야기는 아니다.



클레르는 <밤의 클라라>에 의지하여 단정치 못한 싸구려 옷과 진하고 야한 화장으로 손님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낮의 클라라>는 복근운동을 하고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공원을 산책하고 독서를 한다. 서점을 들리고 계획을 세워서 오후시간을 보낸다.

- 클레르는 뒤라스나 막 콜레트의 책을 읽었다.

읽을 책 없이 지하철을 타는 것도 끔찍하게 여긴다.

 그런 클레르에게 이십 시는 삶의 경계이다.






 


이토록 매력적인 여자가 어떻게 해서 매춘을 하게 되었을까를 풀어내는 것이 작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학대받은 여성, 가난한 여성. 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라면 초반의 매력을 감소시킬 뿐이니까. 또 그런 사연을 드러내는 방식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 다니엘을 통해서 비교적 안전하게 마무리를 지었다고 생각된다.

 

 어떤 이들은 자기 삶에 벗어나기 힘든 유령을 지고 살기도 하니까. 그런 점에서 별 무리 없는, 꽤 글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었다.

 





지금 나는 창녀이고 그가 나를 창녀로 대해 주기를 바랐다. 이런 일은 '낮의 클라라'가 '밤의 클라라'의 영토를 잠식하는 문제 그 이상이었다. 나는 깨지기 쉬운 그 미미한 경계를 확립하느라 몇 년의 세월을 바쳤고, 그 경계를 필사적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나의 낮 시간은 밤 시간의 네거티브 필름이었다. 알코올도 없고, 섹스도 없고, 남자들도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내 삶의 두 얼굴과 이어 주는 시간표를 엄격하게 준수할 뿐이었다.

 

나는 확실히 파리에서 가장 엄격한 원칙을 가진 창녀였다. 그리고 그런 원칙들 때문에 마음의 평온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때로는 육신의 안락함과 비슷한 기분이 온몸을 감싸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었다.

 

독서도 기쁨의 또 다른 근원이었다. 독서는 언제나 나를 기쁘게 했다. 책은 나를 야만에서 구해 주었다.

 

나는 내 손님들을 두 부류로 분류하고 있었다. '고전파'와 '규격외파'

규격외파와 일을 하게 되면 어떤 패를 들게 될지 좀더 불확실하다. 섹스에 대한 요구도 때때로 놀랄 만큼 파격적이다.

 

아주 정밀한 삶의 규칙과 윤리의 측면이 더욱 강화되었다. 나는 폭력과 압제가 불시에 내 삶에 다시 얼굴을 들이밀까 봐 두려웠다.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것, 예측할 수 없는 것에 절대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일종의 섹스 공무원이 되어야 했다. 경계표를 세우고 시간을 정해 놓고 일하는 창녀.

 

나는 긴장을 풀고 책 속에 빠져들려고 애쓰면서 날마다 책 한 권씩을 읽었다.

 

나는 내 이름에 애착을 갖고 있었고,오랜 시간 동안 그 이름에 적응되어 있었다. 하지만 부모에게 받은 그 이름으로 계속 불리면서 으스러질 듯한 중압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손쉬운 선택을 했다. 나는 '클라라'가 되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서투르고 역행하는 사랑만큼이나 깊고 오래 지속되었던 그 분리.

 

우리는 저주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우리 두 사람은 저주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저주를 향해 걸어갔던 것이다.

 

벌거벗은 채 그 곳에 있자니 나 자신이 끔찍할 만큼 낯설게 느껴졌다. 비정상. 사실 그것은 야릇한 일이었다. 나는 아주 가까운 곳으로 유배를 떠나온 것 같았다. 조금은 부조리한 일이기도 했다. 자기가 사는 동네의 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과 같은.

 

그 모든 사랑의 절반만으로도 질식해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