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침대에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보사노바풍의 따뜻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장난스럽게 춤을 추듯 방안을 이동하며 서로를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멈춰 서더니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응시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나체의 남녀가 보았다. 그는 우리의 모습이 비춰진 거울을 보고 있었다.

예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영화 ‘원초적 본능’. 그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고 흥분시킨 최고의 에로틱스릴러였다. 그렇기에 그 영화 속의 많은 장면들은 나의 성적 판타지에 영향을 미쳤고, 그 중 하나가 바로 거울이었다. 샤론 스톤이 연기한 캐서린의 침실 천장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려있었다. 정사를 나누는 캐서린과 형사 닉의 모습.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여 그것이 천장에 있는 거울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캐서린과 닉은 섹스에 몰두하느라 거울에 시선을 응시하진 않았다.

하지만 천장에 거울이 있다면 여자의 입장에서는 지루해지기 쉬운 정상위로 할 때 그의 넓은 어깨와 근사한 등을 본다든지, 섹스를 하며 짓게 되는 나의 표정을 관찰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허리와 엉덩이를 유연하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보면 몸이 좀 더 뜨거워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는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것과는 달랐다. 카메라의 적절한 뷰포인트와 결코 지루하지 않은 편집, 적당히 분위기를 살려주는 음향효과가 빠진, 날 것의 ‘나의 섹스’를 바라보는 것은 약간의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뒤따랐다. 거울을 보며 섹스를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이런 느낌을 받게 될 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와의 두 번째 섹스에서도 우리가 노닥거리는 소파 옆에 거울이 있었다. 거울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닌 나를 초대한 뒤 일부러 옮겨놓은 게 분명한 위치에 세워져 있었다. 그의 손길은 내 옷을 자연스럽게 한 겹 한 겹 벗겨낼 정도로 능숙했다. 그러나 서로의 몸을 만지고 자극하며 서서히 쾌락으로 빠져드는 순간, 의도를 가지고 자리를 잡고 있던 그 거울이 신경쓰여 쳐다보았다. 나는 거울 속에서 또다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거울 속의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르시스처럼 섹스를 하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있었다.

섹스를 하는 나를 거울을 통해 보는 것이 왜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와의 두 번째 섹스에서 밝혀졌다. 나의 섹스가 영화적이지 않고 현실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미 그가 거울을 장악하고, 내가 즐길 요소를 빼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둘 다 상대가 아닌 거울을 보며 섹스를 할 순 없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가 거울이 아닌 나에게 도취된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사진출처 - Gossip Boy

그가 먼저 거울에 시선을 꽂아 그에게 빠져있는 나를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내가 한 발 늦은 것이었다. 약간 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그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는 수월하게 여자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나는 경험이 풍부한 그를 통해 색다른 섹스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섹스란 이미 새로울 것도 없는 닳아버린 것이었고, 그나마 거울을 통해 자기 매력을 확인하고 스스로에게 빠져드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와 내가 닮은꼴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가 호숫가에서 수선화로 변한다면, 나는 그 꽃을 뿌리째 뽑아 바닥에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의 매력을 과신하며 상대가 아닌 자신에 집중하는 그의 거만함이 경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측면 거울이 아닌, 반드시 천장에 달린 거울을 보며 섹스해보리라는 투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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