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는 헤파이토스의 형제인 아레스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레스는 올림포스의 신들 중 가장 불량끼 있는 깡패 신이었지만, 훌륭한 외모를 하고 있었으며, 그 스스로도 아프로디테를 차지하기 위해 안달이 나있었다. 그래서 그는 볼품없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아프로디테를 빼앗기자, 자신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뻔뻔스러움을 이용하여 아프로디테의 정부가 되었다. 이들의 애정행각은 모든 것을 보는 태양 헬리오스가 중천에 떠있을 때에도 과감하게 이루어 졌다. 보다 못한 헬리오스는 이 사실을 헤파이스토스에게 알렸고, 대장장이의 신은 자신의 솜씨를 발휘하여 아프로디테의 침대 위에 보이지 않는 쇠그물을 장치해 놓았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그들의 은밀한 만남을 즐기려다 그만 쇠그물에 걸려들고 말았다. 헤파이스토스는 이 불륜의 현장을 제우스를 제외한 모든 신들에게 공개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중재로 이들은 겨우 풀려날 수 있었고, 무능력한 헤파이스토스는 오히려 여러 남신들 앞에서 우스운 꼴이 되었다. 아프로디테는 곧바로 키프러스 섬의 '파포스' 샘에 가서 목욕하여 다시 처녀성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 좋아하는 이야기의 하나이다. 아프로디테의 성적 매력. 방종. 남편에 대한 기만에 이런 부분에 끌린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 ‘그녀는 언제나 파포스 샘에 가서 자신의 몸을 씻고 처녀가 되었다.’ 라는 구절이 나를 사로잡았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854 샘(La Source)






여자는 남자보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의식이 휠씬 높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기분 좋은 일, 즐거운 일에 민감하다. 특히 사랑 받은 일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여자는 기분 좋은 일을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느끼기 위해 맛있는 음식이나 감동적인 영화, 기분 좋은 연애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반면에, 기분 나쁜 일이나 불쾌한 일은 애써 민감하게 반응하고 피한다. 왜냐하면 여자는 기분 나쁜 일이나 불쾌한 일을 당하면 몸 안에 독이 퍼진 것처럼 몸과 마음이 오염될 뿐만 아니라 평생 치욕으로 남기 때문이다. 여자의 긍지는 기분 좋은 사랑이 몸 속을 돌고 있을 때 생겨난다. 따라서 여자가 가장 여성으로서의 긍지를 잃을 때는 성 추행을 당했을 때이다. 무엇보다 강간당했을 때 여자는 긍지에 커다란 상처를 입는다.
여자는 자신의 몸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하면 자신감과 긍지를 잃어버린다.



<여자는 남자의 어디를 볼까> 중에서 인용, 책에서 읽은 여자의 특성. 성급하게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부분이있다.  자신감과 긍지의 문제에 있어서 저 책을 읽으면 여자는 너무 나약한 존재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여자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그녀들만의 비법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가능성을 열어둔다"  가지지 못한 그녀에 대해 남자들은 몸을 달아하고, 그리워하고, 애달파한다. 어찌하여 사귀게 되었지만 얼마 못 가 헤어지더라도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며 가끔은 그녀 생각에 전화를 걸게 만드는 '여지'를 그녀들은 남겨둔다.


하지만 나는 관계를 벌려두는 것에 대한 공포심 같은 게 있었다. 쿨하고 섹시한 이미지의 나를 만들어가면서도 내심 내 안에 있는 순결함 그리고 더럽혀진다는 것, 다른 표현으로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접근해오는 남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끊어버릴 것인가에 대해서만 집중했던 것 같다.

원초적인 직감에 의거하여 ‘저 남자는 나에게 상처를 줄 것 같다.’고 느끼는 관계 혹은 분명 지루해질 게 불 보듯 뻔한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어떤 기억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어지게 만들었다.

내가 '이것은 나의 로맨스야' 라고 기억할 몇 개의 관계를 제외하고, 기억함으로써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 실수로 인해 마치 불결한 것이라도 묻은 것처럼 느껴지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게 만들어버렸다.

그러기 위해서 ‘그 사람은 나를 추억해서도 안되고 그리워해서도 안 된다.’  그 남자가 나빴다라고 관계를 종결하게 되면 ‘나쁜 남자를 만났다.’, ‘애초부터 나쁜 남자에게 끌렸다.’는 자책감에 늘 시달려야 할 테니 <가장 매몰차게 그리고 가장 나쁘게 끝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내가 나빴다라고 하면 그 사람이 뭔가 나에게 상처를 남겼다라는 것이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난 늘 고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프로디테가 파포스 샘에서 목욕을 하고 처녀성을 회복하는 것처럼 기억하기도 싫은 나쁜 여자가 되어버리는 의식. 그걸 늘 치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 깊이 상처받은 적 없어. 순수한 상태의 마음을 늘 유지하고 있어.' 라는
자기만족적 상태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내 안에서 곪은 외로움과 솔직하지 못함에서 오는 찌꺼기들이
의식을 치르는 샘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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