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나는 연애소설을 좋아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나는 에쿠니 가오리든 요시모토 바나나든 말랑한 듯 하면서도 건조한 그런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가벼운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거였다. 한동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붙잡고 있었지만, 책장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던 것은 내 자신이 생각하고 고민하길 멈췄기 때문이었다. 이런 연애소설의 책장은 훅훅훅하고 넘어가서 반나절도 안 되서 다 읽어버린 것이다. 아아, 이 책을 계기로 알아버렸다. 나는 점점 고급 독자에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물론, 연애소설만 읽는 게 흠이 될 건 없다. 책도 한 번 안 펼쳐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손쉬운 TV나 인터넷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책장을 넘긴다는 건 의미가 있다. 연애소설만으로도 괜찮다.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찰랑찰랑하게 만들 수 있다면 더 깊고 넓은 세계에서 놀지 못하더라도, 놀라움을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고만큼의 즐거움을 얻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미호와 조지 사이의 긴장감이 좋았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와 다시 연애를 한 여자.

그 남자의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게 한바탕 퍼부을 때 후련한 느낌이었다. 물론 복수하기 위해 재결합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깨진 머그컵은 간신히 붙일 수는 있어도, 그 금이 간 자국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머그컵 1 이론에 맞게 미호와 조지가 끝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처음부터 감을 잡고 들어갈 수 있다. 여자가 받는 깊고 큰 상처, 그 섬세한 부분까지 헤아리고 있어 난 작가가 당연히 여자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저자 소개를 읽는데 남자여서 놀라긴 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무척이나 예민한 남자겠구나 싶었다.


소설의 큰 줄거리와는 상관없지만 조지가 미호의 몸을 씻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섹스의 장면을 묘사한 것도 아닌데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 그랬다. 여자의 몸을 제대로 씻겨줄 수 있어야 진짜 여자를 잘 다루고 잘 아는 남자라고 말했다. 그런 말 때문인지, 초반부의 조지에 대해서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뭔가 호감가는, 어딘가 괜찮은 구석이 있는 남자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 기대는 다른 표현을 하기 힘든데, 더럽게 깨져버렸다. 조지같은 무신경하고 이기적인 남자는 딱 질색이다.

 

연애소설로 어필하기 위해 미호가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서른다섯의 나이로 제목을 정한 것 같지만, 원제를 쓰는 게 훨씬 분위기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른다섯, 사랑>이라는 제목이 미호가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응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가볍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그러나 내게 아기의 등장은 거슬리는 장치였다. 어떤 의미로 등장하는 것인지는 알겠지만, 그런 부분이 클리셰였다.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있었다면 좀 더 세련되게 느껴졌을 것 같다.

 

어쨌거나, 간만의 연애소설이라 정말 후르륵 금방 읽어버렸다. 읽는 동안 느낌이 좋았다. 유지라는 남자 그리고 그의 문신도 마음에 들었다. 옛날부터 문신이 있는 사람은 피부가 양각과 음각이 느껴질 거라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참으로 웃긴 생각이었다. 피부를 물들이는 것이지 피부에 조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유지같은 남자라면, 유지의 문신이라면 혀로 핥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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