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문을 여는 것은 금기가 아니었다. 그날 아침도 정민은 평소대로 “엄마, 밥 안 줘?”하며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나 정민이 문을 열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부모님은 깊이 잠들어있었다.

일요일 아침, 늦어진 식사준비에 배가 고파진 정민은 짜증을 부릴 생각이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보고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이불도 덮지 않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잠들어있는 부모님의 몸을 아침햇살만이 감싸고 있었다.

열일곱에 그런 장면을 목격한 것은 충격적인 일은 아니었다. 키스할 때마다 가슴을 만지려고 별 수를 다 쓰는 남자친구 때문에 섹스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탐구를 하고 있던 정민이었기에 부부라면, 그것이 나의 부모라고 하더라도 섹스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당연한 것이지만 생각할수록 이 모순적인 상황에 정민의 머리는 오류가 날 것 같았다. 두 분의 삶에 섹스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지난 번 부부싸움에서 결국 아버지는 손을 들었고, 어머니는 코뼈가 주저앉아 응급실에 실려 갔다. 아버지는 폭력을 사용했지만 정민은 과민한 어머니를 말리기 위한 행위였음을 알고 있다. 이번에도 부서진 전화기는 어머니가 던져 못 쓰게 된 열네 번 째 전화기였다.

일러스트ⓒ이은아
정민은 항상 싸우는 부모님을 보며 두 분이 그냥 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복한 아이인 척 가장할 수 없게 편모 혹은 편부의 자녀가 되는 걸 은연중에 두려워했다. 화목한 가정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정민은 ‘부모님 이혼’이라는 서류로 증명되지 않았기에 친구들 앞에서 혹은 선생님 앞에서 언제나 좋은 환경에서 반듯하게 자란 아이인 척 하며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고 애썼다.

그런 부모님이 사랑하는 사이에서 하는 행위라는 섹스를 했다니, 열일곱의 정민은 섹스와 사랑을 동격에 두었고 그 순간은 안도했다. 부모님이 섹스를 한 그 며칠간의 집안 분위기는 상당히 부드러웠고, 어쩌면 늘 꿈꾸며 간절히 바라던 행복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싸움은 그 뒤로도 계속 되었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고 더 이상 부모님과 한 집에 살지 않아도 되었을 때 정민은 진심으로 자신만의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생각했다.

정민은 남자와 싸우지 않았다. 평화를 유지했지만 결국 매번 어긋나 버렸고 한 사람과 정착된 관계를 맺지 못했다. 정민은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부딪히고 싸워야 할 순간, 남자가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면 그의 입에 혀를 넣어 진한 키스를 하며 곧장 그를 흥분시켜버렸다. 그의 허리벨트를 풀고 곧장 페니스를 애무했다. 싸움을 피할 수만 있다면 하루 종일 섹스만 할 생각이었다.

부모님처럼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을 도피한 채 과도하게 시도하는 섹스, 아무리 남자들이 섹스에 열광한다 치더라도 정민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섹스가 문제의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은 정민의 실수였다.




이코노미스트 1073호












섹스리스한 삶은 결코 괜찮지 않다. 섹스리스한 삶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태도는 잔인하기 짝이 없다. ‘괜찮다’ 되뇌며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더라도 결국 그렇게 참아온 불만은 터져버리게 마련이다.

 

일러스트 ⓒ 이은아
결혼한 지 7년 만에 제 집 마련에 성공한 지연은 집들이에 직장 동료들을 초대했다. 디자이너인 지연의 남편이 고른 가구와 각종 인테리어 소품에 다들 감탄하며 부러워하고 있을 때였다. 현이 지연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둘이 같이 안자죠?” 지연은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한 집에 살고 있지만 생활공간을 나누어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섹스를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약혼녀와 동녀 중인 현은 지연의 집을 둘러보다 자신의 집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농담처럼 던진 말에 ‘들켜버렸다’라는 표정을 짓는 지연을 보니 미안한 마음과 차라리 잘 됐다는 마음이 교차했다. 

  “내 약혼녀는 키스만 해도 헛구역질을 해대죠. 하긴 자기 혼자 양치질 하다가도 우웩거리는 여자니까. 5년 만났는데 한 세 번 키스 했나. 그러니 섹스는 당연히 생각도 못하죠.” 현은 자신의 고민을 지연에게는 말할 수 있었다. 믿음, 사랑, 소망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의리’임을 알기에 다른 여자를 만나야겠다거나 약혼녀와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섹스만 제외하곤 둘은 천생연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남편은 가사 일도 도맡아 해주고 내가 사회생활 하는 것도 잘 이해해주니까. 아이가 없는 것도 오히려 편해. 남들은 걱정하지만 우린 그 덕분에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현과 지연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야근 후에 단둘이 술을 마시는 일도 종종 생겼다. 그러나 뻔한 불륜스토리처럼 되고 싶지 않았던 지연과 현은 실수하는 일없이 깔끔한 관계를 유지해나갔다. 

  그러다 현이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날. 단둘이 이별주를 마시다 지연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냥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단 생각이 자꾸 들더라. 나도 여자인데, 누군가의 따뜻한 품에 안겨 잠들고 싶은 밤들을 떠올리게 되는 거야. 그래서 남편한테 병원에 같이 가보자고 했어. 남자는 지금 완벽하고 만족스러운 상태인데 왜 다시 그런 문제를 꺼내야 하는 거냐고 하더라. 첫사랑인 그 남자랑 결혼해서 평생 그 사람 밖에 모르고 살았어. 그러니 다른 사람이랑 했을 때도 같은 문제가 생기는 거라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살고 싶어. 내일부턴 회사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니까 뻔뻔하게 부탁하는 건데, 나 좀 도와주면 안 돼?”

  괜찮다. 그 말로 버텨온 시간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은 술에 취해 흐릿해진 판단력으로 그녀를 안은 것이 아니었다. 변명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순간에는 그래야 했다.

  “우리가 결혼하고 나서도 그러면 어떡하지?” 현의 질문에 약혼녀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잘 참아줄 순 없어?”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말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전혀 모르는 약혼녀의 얼굴. 현은 괜찮지 않았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그녀의 간곡한 목소리가 현을 자각시켰다.

  오래도록 누군가를 안아본 적 없는 현이었기에 자신의 미숙함이 그녀를 또 상처 입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는 달리 삐걱거릴 것 같았던 둘의 섹스는 잘 맞춰진 퍼즐처럼 순조롭게 격정적이었다. 그들은 섹스를 하지 않고 살아도 아무렇지 않은 무성(無性)의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다.




이코노미스트 1070호










 







이코노미스트의 특별부록으로 만들어진
<행복한 인생 2막, 아름다운 그대는 액티브 시니어>의
CHAPTER 5 <性은 늙지 않는다>를 맡아서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제 사진도 실린 마당에 왜 제 이름이....김현전, 김현장도 아니고 완전 다른 김현주라고 들어가 있는 것일까요?
성칼럼니스트'은'이 아니라 '는'이지 않습니까? 이런 오타에 오골오골. 
CHAPTER 5에 4개의 글을 실었는데 전부 김현주로 들어가 있어서 속상했어요.
- 기자님이 밥 사주신다고는 했지만 속상한 건 속상!


그런데 '그래도 이코노미스트'라고 긴장 타며 - 원고 마감도 며칠 남지 않은 상태에서 청탁을 받아서 더욱 그랬죠. 
평소 제가 쓰는 글보다는 좀 더 품격있게 쓰려고 하다보니 좀 딱딱하게 쓴 것 같지만
오늘 책 나온 거 받고 빵터짐.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는 굴에 아연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 섭취하면 좋다'라는 내용이건만.
어째서 중제가 <남자는 우유·토마토>인가요? 뭔가요?   
 
 

모르는 사람은 제가 저렇게 중제를 뽑았을 거라 생각할텐데 부끄럽네요.
아닙니다. 전 아니예요.
우유라뇨.
전 우유, 될 수 있으면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쪽인걸요!
칼럼에도 우유 좋다는 말은 한마디로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어쨌거나 우여곡절과 실수는 많았어도
<이코노미스트>에 글을 싣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전 본명은 김현주가 아니예요. 현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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