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부족의 여름밤
올해 여름은 유난스럽게 덥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견뎌보지만 자다 깨서 몇 번의 샤워를 반복해도 몸속의 열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밤에 잠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올림픽 중계가 밤새도록 이어졌다. ‘유럽에서는 왜 올림픽을 새벽에 하나요?’라며 투덜거리면서도 TV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새벽 네다섯 시가 되어 체력이 방전되면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면 시간은 두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옆집 재건축 현장의 소음이 날 깨웠다.
한 달 넘게 이런 패턴의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신경이 끊어질 것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변해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잠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등에 욕창이 생길지언정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한 백 년 즈음 곯아떨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자려고 누워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헤롱거리는 데 잠들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의 반복이었다. 수면유도제도 소용이 없었다.
몸을 다른 식으로 혹사시킬 필요가 있었다. 내게 필요한 건 ‘섹스’였다. 생생하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섹스 말고 무얼 해도 즐겁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기력과 몽롱함이 뒤섞여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섹스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었다.
이럴 땐 움직임이 격할 필요는 없다. 10까지 달아오를 수 있다면 급작스럽게 그 수치를 0에서 10으로 올라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흥분해 나가는 것이다. 몽롱한 상태를 깨트리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젖어가는 섹스가 필요한 것이다.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느긋하게 삽입을 한 다음에 서로의 몸을 움직이기 보다는 몸안에 차 있는 그것의 형태를 꼭 붙잡고 있고 싶다는 듯 가만히 그리고 꽉 조인 상태로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섹스를 원했다.
섹스를 하는 내내 눈을 감은 채로 시각적 정보가 아닌 한껏 예민해진 몸이 받아들이는 정보에 의존하는 것이다. 내 몸을 짓누르는 상대방의 무게를 받아들이며 동시에 나의 존재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몸 속 어딘가 쌓였던 긴장을 풀어내는 섹스를 원했다.
그의 품에 가만히 안긴 채로 질의 근육만으로 그의 페니스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나는 엎드린 채로 그의 움직임을 받아들이고 다리에 힘을 줘서 절정에 오를 만큼의 자극을 더한 뒤 그렇게 포개진 채로 누워 있고 싶었다. 섹스가 끝난 뒤엔 샤워도 하지 않은 채 그의 곁에서 곤히 잠들고 싶었다. 지독한 수면부족 상태를 나는 그렇게 종결짓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