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란 불확실한 것
쉽고 가볍게 연애를 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설레어 동동 뜰 틈도 없이 이것저것 머리에 생각을 가득 담다보면 그 무거움이 시작도 안한 연애를 망치는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K는 누구 못지않게 꼼꼼하고 치밀하며 계획적인 삶을 살아왔다. 6년이나 사귄 남자친구와 이별을 할 때에도 자연사하기 시작한 자신의 연애 상태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이별하는 방법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이별이라는 감정적 손상을 최소하며 자기 개발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선택이었다. 외향적인 성격의 K였기에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잘하고 낯선 나라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러 다니느라 정신없이 지냈다. 오랜 연인의 빈자리는 허전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별의 방법으로 꽤나 적절했다고 K는 생각했다. 4살이나 어린 연하와의 연애였기에 관계의 종착점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당시 K는 29살, 여자에게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나이였다. 서로 크게 싸운 적도 나빴던 적도 없었던 관계였기에 이별 자체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이별마저도 철저하게 그녀의 계획안에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K는 그 이별 후 3년을 비연애주의자로 지냈다. ‘연애를 하고 싶다’ 말은 하면서도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앞서 이 연애가 어떻게 될 것인가 혼자 그림을 그려보고는 마음을 접었다. 30년을 넘게 살아오면 두르게 되는 나이테에서 나오는 안목은 무시하기 힘들다. 굳이 여러 번 만나볼 필요도 없이 몇 가지로 사람을 판단하는 노하우 같은 것을 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K는 지나칠 정도로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쉽게 끝나버릴 관계는 지금 당장 호감을 느끼더라도 관계를 진척시키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연애를 생각하다보니 쉽사리 시작하지 못하는 문제에 빠져버렸다.
‘이 나이에 사람을 새롭게 만나는 거라면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라는 말을 부정할 순 없었다. 누군가에는 연애가 가시적인 결과물로 종결되어야 하고, 결혼이라는 대전제를 두고 연애를 시작해야 하는 것 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연애 사건의 앞날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불투명하다. 바로 그런 불확실성이 연애를 흥미롭게 만들어주며 우리의 심장에 쫄깃한 전기 자극을 부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정적이고 순조롭게 하고 싶다고 해도 쉽사리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K의 성격이라면 시작이 어떠하든 현명하고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K가 6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관심이 생겼다고 했을 때, ‘나이가 너무 어려서 잘 되긴 힘들거야.’라고 지레 포기하려고 했을 때, 머리를 버리고 몸이 가는대로 행동하려고 옆에서 계속 부추겼다. 그 당시 K와 단짝 친구처럼 찰싹 붙어 다니던 시기였기에 틈만 나면 세뇌하듯 그 남자의 장점을 나열하고, ‘단지 연애만 한다.’ 맘 편히 생각하라는 말을 주문처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그래도’라는 말을 하며 멋쩍어하면서도 나름 마음에 쏙 들었는지 만날 기회를 자주 만들어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하다 보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귀게 되었다. 그저 서류상의 나이로 어리게만 봤지만 어릴 때부터 사회 경험도 많이 하고, 빨리 가정을 꾸리고 안정되고 싶어 하는 성향까지 갖추고 있어서 애초에 계획했던 것도 아닌데 K의 연애는 자연스럽게 결혼이라는 결말을 향하고 있었다.
세상 일 열에 여덟아홉은 내 맘 같지 않다지만 오히려 욕심을 버릴 때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끝을 생각하는 것은 관계에 결코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못한다. 불확실함을 즐길 줄 아는 것. 그것의 설렘이 연애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면 다음 연애는 조금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