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호텔 문이 닫히자마자 나를 벽면으로 밀어붙였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매번 반복되는 그만의 시작이었다. 물러날 곳에 없는 막다른 곳에 세워놓고 커다란 손으로 내 목을 감싸며 키스를 했다. 등에 닿은 벽의 차가운 기운과 입술에 닿은 뜨거운 숨결의 온도차는 이 관계의 마음과 몸을 반영하고 있었다. 


남자는 나의 가장 냉담한 일면과 마주했다. 우리는 다정한 눈빛을 교환하거나 상냥한 말투를 주고받지 않았다. 애교도 없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밖에 없다는 거짓 뉘앙스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위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1/n. 그저 내가 섹스 할 수 있는 여러 남자 중 한 명. 그 사실을 감추지도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남자의 좋은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효율적이었다. 그를 흥분시키기 위해 내가 뭔가 하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 자체로 허벅지를 찌르는 이미 충분한 단단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고 남자를 흥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지겨운 나에게, 나와 함께 밀폐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발기하고 그걸 유지한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집중력이었다. 내가 원하는 섹스를 하기엔 결함이 많은 그의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교접으로 끝나지 않고 만남이 지속되고 있는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내게 몰입하는 감각이 좋았다. 이 순간 머릿속에 나와 몸을 섞는 것 밖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명쾌한 발랄함이 마음에 들었다. 오직 이 몸만을 애타게 기다려 온 사람처럼 젖가슴을 양손으로 모아 쥐고는 오른쪽 왼쪽 모두 놓치기 싫은 듯 얼굴에 비벼대는 걸 볼 때면 그의 작은 페니스는 용서할 수 있었다. 


시간이 쌓이기 시작하자 어느 순간부터 그의 손은 형상기억합금처럼 내 몸을 만지는 강도가 딱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내 몸을 다루는 방식에 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적절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게 그를 격려하는 방식이었다. 


남자는 목을 깨물며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넣고 싶어.” 서둘러 삽입해봐야 즐거움의 시간이 줄어들 뿐이었다. 그의 페니스는 내 몸 안에서 제대로 버티지 못했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사정할 것처럼 괴로워하다 몸을 빼곤 했다. 


그렇게 소박한 페니스로도 내가 조이는 걸 그토록 잘 느낀다니 신기하기도 했고 그렇게 감탄하며 못 견뎌하는 모습 때문에 신이 나기도 했다. 좀 더 괴롭혀주고 싶다는 못된 기분도 솟아올랐다. 몸을 움직이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생동감이 넘쳤다. 파닥거리는 생선처럼 둘 다 요동쳤다. 그에게 좀 더 버티라고 요구하고 정신을 못 차리려고 하면 그의 뺨을 후려치는 게 좋았다. 그의 가슴팍을 발로 밀어내면서 내 몸에서 떨어뜨려놓고 그걸 왜 못 버티냐며 힐난의 말을 쏟아내는 것도 좋았다. 


남자는 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기분 나빠하거나 자존심 상해하기는커녕 부족한 자신을 만나주고 있는 나를 은혜롭게 여겼다. 그 지점, 섹스 하는 동안 숭앙을 받는 기분. 삽입할 때마다 내뱉는 그의 탄성은 항상 마음에 들었다. 낮게 읊조리며 내뱉는 욕도 좋았고, 긴 탄성과 함께 “이게 섹스지.”라고 말하는 것도 좋았다. 다른 애들이랑은 이런 느낌이 없다고 빈말이라도 그렇게 내뱉는 칭찬이 듣기에 거슬리진 않았다. 


남자는 섹스에서만큼은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내가 자기를 왜 만나고 있는지 궁금해 하곤 했다. 그에게 답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궁금해 할수록 섹스의 기회를 조율하기 쉬울 테니까. 그가 자신 말고도 내가 섹스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나았다. “못하는 남자랑 하더라도 섹스는 다다익선이지.” 그렇게 말하는 내 말을 의심도 하지 않고 믿는 게 나았다. 그러면 된 거라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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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쿠미의 친절한 언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스무 살 때부터 10년간, 자신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언어를 습득하고 사용한 것의 딱 절반이 되는 시간 동안 한국어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그의 한국어 나이는 10살. 물론 서른의 사고로 걸러져 나오는 10살의 언어는 10살 남자아이의 언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소년같이 맑은 언어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그 언어는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타쿠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이 언제나 쉽게 관철된다고 생각했다. 타쿠미가 이끌어낸 결론이란 생각은 하지 못하는 듯 했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상대의 선택에 대해서 안 돼요 혹은 싫어요라는 부정적인 표현은 하지 않으면서도 조타 지휘를 훌륭하게 해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유유하게 사람들 사이를 유영하곤 했다.

 

"자에도 모자랄 적이 있고 치에도 넉넉할 적이 있다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무능력함에 질려 투정이라도 부릴 때면 타쿠미는 한국인들도 잘 쓰지 않는 속담으로 그 상황을 위로했고,  능청스럽게 단어를 지어내고, 가끔 섹스를 연상케하는 짓궂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 태연한 얼굴로 그런 말을 했다. 생각없이 내뱉은 말인 게 분명한데 나는 그의 앞에서 쉽게 정색하고 크게 웃었다가 무너지길 반복했다. 나보다 한국말이 서툰 사람에게 한국어로 놀림 당하는 기분은 썩 좋진 않았다. 가끔 그와 헤어진 뒤 서로 나누었던 대화를 되짚어보다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의 말에 반응이 오고 맞받아칠 말들이 생각났다. 타쿠미와 있을 때는 농담의 깊이가 훅하고 들어왔다 금세 쑥 빠져버리지만 그가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가 쿡쿡 쑤셔 왔다. 타쿠미가 내뱉은 농담의 질이 나빴던 게 가장 큰 원인이고 그걸 냉정하게 받아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반복되도록 내버려둔 내 잘못도 컸다. 그렇다고 그에게 "야메떼!" 라고 말하기도 우스웠다.

 

타쿠미는 자신이 가진 언어보다 더 큰 사고를 했다. 언어가 사고를 제한하지 못 했다.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자신의 세상을 규정하고 확장시켰다. 어렵지 않게 사람들을 그 세계로 끌어들였다. 타쿠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자신만만함이 있었다. '내겐 적이 없어'와 같은 태도. 하지만 그에겐 제대로 된 아군도 없었다. 친구들은 많았지만 타쿠미가 그들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울리는 것, 굳이 우정을 기반으로 하지 않더라도 그 시간을 함께 어울리면서 즐거울 수 있다면 타쿠미는 만족스러워했다.


소위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혼네(본심), 타쿠미의 본심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국민성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게 그 사람 특유의 진심을 알 수 없는 느낌이었다. 앞에선 잘 감추고 뒤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정말 마음이 없는 사람. 언어에서 나오는 분위기가 그랬다. 친절하지만 다정하진 않았다. 몸을 담그고 있다보며 미지근하게 식어서 갑자기 한기가 끼쳐오는 그런 언어를 사용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견디지 못했을텐데 나는 타쿠미의 그런 점들을 속상해 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루는 아무렇지 않게 타쿠미가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듣다보니 예전에 한 번 들은 적 있었다. 팩트는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것이 발화된 순간이 달라서인지 이야기가 가진 비극성이 짙게 느껴졌다. 낯선 한국에 와서 적응하는 동안의 고생스러움은 지나고보니 희극처럼 표현되었지만 그 당시의 타쿠미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잔했다. 하지만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공감을 하지도 못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능력을 쓰곤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제대로 느낄 수 없음을 감추기 위해 포즈를 취한 것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투영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은 애를 써야했다. 과장된 공감의 언어를 쓸 땐 오히려 관심이 전혀 없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타쿠미가 일본 어느 현에서 살았으며 며칠에 태어났으며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사실 정보도 생각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 사실을 들은 적이 있었지라며 기억하는 것도 어떨 땐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곤 했다.



타쿠미는 그런 나의 망가진 일부분을 그냥 바라보았다. 고정되거나 응시하는 시선이 아닌 카메라로 어떤 장면을 담듯 ​판단하지 않고 보았다. 아니 본인 나름의 판단을 내렸겠지만 그걸 내게 들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으로 나를 만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느낌에 도취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이 들어가 자신에게 매료된 한 여자를 지켜보고 관찰하는 것이 지금 그에게 새로운 유희일지도 몰랐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타쿠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받아들여준다.

 

 

우린 서로가 너무나 맞지 않고 의견 조율이 쉽지 않으며 나는 그에게 투정만 부리고 내 의견을 설득의 작업없이 관철시키려 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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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라 북적이는 기차 안에서 그녀는 미동 없이 울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가 옅은 울음을 삼켜버렸지만 그녀의 오른쪽 뺨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도 숨길 수 없었다. 옆자리의 낯선 사람일뿐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로 하여금 슬픔을 고요하게 꾹 누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곧 그만 두었다. 애인과 헤어져서 그럴 것이라는 내가 바라는 답만 떠올랐고, 그러자 속절없이 실체도 없는 그 남자가 미워졌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자를 울리는 건 같은 남자로서 용서가 되지 않았다. 동시에 그것이 나에게 기회가 되길 바라는 게 한심했다.

 

손수건을 찾으려는 듯 천으로 만든 가방을 뒤적이던 그녀는 갑자기 허둥거리며 가방 안의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작은 파우치, 손거울, 휴대전화, 선글라스, 물티슈와 손수건이 나왔지만 그녀가 찾는 건 없는 듯 했다. 당황한 눈빛으로 자신의 발밑을 살펴보더니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라며 자신이 나갈 공간을 요청한 그녀는 기차 통로에서 다시 한 번 좌석 바닥을 살펴보았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 표정. , 타인의 곤란함에서 음욕을 느끼다니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욕지거리를 스스로에게 내뱉었다. 그때 기차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기차가 정차할 곳은 조그마한 간이역이었다.

 

그녀가 잃어버린 건 지갑이었다. 더 이상 어딘가로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듯 그녀는 선반에 올려놓은 작은 여행 가방을 내렸다. 그 순간 나역시 본능적으로 배낭을 둘러맸다. 그리고 안도했다. 그 간이역에서 내린 사람은 그녀와 나 둘뿐이었다. 상심한 그녀는 벤치로 가서 앉았다. 나도 함께 내렸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 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었다. 누군가와의 전화통화는 지나칠 정도로 담백했다. “나 지갑을 잃어버렸어. 도중에 내렸는데 데리러 올 수 있어?” 몇 통의 전화를 했지만 다들 사정이 여의치 않은 듯 했고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제가 도와드릴까요?” 목소리를 냈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는데 그 시선이 지긋해서 나는 관통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안심되는 목소리네요.”라고 말했고 살짝 웃었다. “우선 뭐 좀 먹을까요? 신경을 썼더니 머리도 아프고 허기지는군요.” 우리는 간이역을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그녀와 발맞춰 걸으면서 지도를 검색하니 한 1km 정도는 걸어야 했다. 그녀는 조금 전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답지 않게 아니 눈물을 흘렸던 여자답지 않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신이 난 듯 발걸음을 옮겼다. 이래서 오스카 와일드가 ‘여자는 사랑받을 존재이지, 이해돼야 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 것일까.

 

식당은 작고 허름했다. 그런 건 개의치 않는 듯 세 가지 밖에 없는 메뉴 중에서 그녀는 소머리국밥을 시켰다. 국물까지 싹 다 비웠다. “잘 먹죠? 뭔가 위기상황에선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는 느낌이랄까.” 배를 채우고 나오니 찌뿌드드하던 하늘은 좀 더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어디론가 들어가야겠어요.” 식당에 물어보니 민박집을 하나 알려주었고 그곳을 향하는 길에 억수같은 비가 갑자기 쏟아져 얇은 블라우스에 반바지 차림이던 그녀는 완전히 젖어버렸다.

 

방에 단둘이 남게 되자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며 옷에서도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빗물에 그녀의 눈물이 섞여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나는 그녀를 와락 안았다. 뺨을 맞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웃음소리가 멈췄다. 그녀는 죽은 새처럼 가만히 안겨있었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은 찰라 그녀는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입을 맞췄다. 그녀의 몸에서는 관능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처절함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또 그런 것이 날 빳빳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이번 여행에서 얻으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 몸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면적으로 포장하자면 그러했다. 여행지에서 낯선 여자와의 난데없는 섹스를 꿈꾼 적이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애초에 베푼 선의의 목적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내버려둘 순 없었다. 하지만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어쩌면 이라는 기대를 품은 건 사실이었고 하늘은 역시,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왔다.

 

젖어서 온 몸을 휘감고 있던 옷은 벗어버렸다. 체온이 낮아져 서로의 몸엔 닭살이 돋아있었지만 몸 구석구석을 차례대로 데워나갔다. “오늘 내가 겪은 불운을 봤죠? 그래도 나를 안고 싶어요?” 그 말은 어떤 주술처럼 들렸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맨몸의 그녀를 다시 한 번 꼬옥 껴안았다.

 

그녀는 요를 두 겹으로 깔고 나를 눕혔다. 그리고 내 몸 위로 올라탔다. 낯선 것에 대한 흥분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계획대로 잘 짜인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허리를 요란하게 움직였고 허벅지로는 내 몸을 꾹 눌러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몇 번이나 절정에 오른 그녀는 내 몸 위로 풀썩 쓰러졌고 이제 내 차례라는 듯이 반듯하게 누워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음날이 올 때까지 잠들다 깨다를 반복하며 어둠 속에서 서로를 더듬어 빈틈을 채워나갔다. 그것만이 애초의 목적이었다는 듯이.

 

상행선 기차를 타고 그녀가 먼저 떠났다. 간이역에 홀로 남겨진 나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어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화창하게 맑아진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을 받으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밤을 지새우는 동안에도 그녀는 자신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녀가 도달하려는 지점에 갈 수 있도록 나의 움직임이 바른 곳을 공략하고 있는지만 물어보았다. 그녀가 왜 울었는지는 완벽한 미스터리가 되었다. 혹여나 계좌이체를 통해 그녀의 이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틀 뒤 확인한 통장에는 이름 대신 그날의 날짜가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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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키가 크고 멋있었다. 근래에 보기드문 비주얼이었다.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반팔 셔츠 덕분에 그의 팔과 손등의 근육이 드러나있었다. M 이유만으로도 그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스기하라의 이름을 말했을 M 자신이 이미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기하라. 가네시로 카즈키가 소설 속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M 스기하라를 떠올리며 자위를 하곤 했다. 치졸한 기준일지 모르지만 M 한동안은 남자를 만날 , 낮은 장애물 정도는 손으로 짚고 훌쩍 뛰어넘는 남자만 만났다. 번째 데이트를 때면 항상 그걸 시험해볼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안해줘도 아웃, 못해도 아웃.

 

M 스기하라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온몸이 젤리처럼 투명하게 하얗고, 팔은 낭창낭창하게 가늘고 길며, 허리는 그가 안았을 팔에 휘어감기지만 푸근할 정도로 커다란 가슴을 가진 여자를 떠올렸다. 일본 그라비아 모델같은? 결코 시바사키 코우 같은, M 같은 여자는 아니었다. M 스기하라에게 어울린 만한 여자와 스기하라의 이야기를 써내렸갔다. 둘은 사춘기 시절 짧게 만나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여자는 하와이로 유학을 가게 된다. 7년이 지난 만난 둘은 순수로 포장했던 시절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육체적인 사랑에 몰입을 한다. M 그녀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밤새 글을 썼다. 그리고 새벽녘 푸르름이 창가에 밀려올 자신이 야하디 야한 소설을 읽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스기하라의 그것이라 상상하며 안으로 밀어넣었다

 

M 스기하라를 사랑한다면 그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 스기하라에 대해 읽으면서 그런 욕망을 품지 않는 여자들은 불능의 여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M 주변에는 스기하라를 아는 여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남자는 더더욱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도서관 시청각실에서 <Go>라는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M 내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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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을 안겨주었던 

어떤 만남 조차도

끝이나고 만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무기력해지기보단

그 만남을 통해 배운 것들을 되새긴다면

 

내 손에 쥐어지는 무언가를 남긴 거겠지

 

 

 

 

 

여름이 물러선 자리에

결실 맺을 가을 냄새가 퍼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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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쁘더라도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여유.

10분을 만나더라도 한 시간 거리를 달려오는 행동.

 

그것이 말하고 있는 마음

 

 

 

 

 

 

 

 

 

Summer N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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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

 

 

 

내가 좋아하는 자세이자 그가 해주길 바라는 것이 한 컷에 담겨 있었다. 
여자의 등뼈를 쓰다듬을 줄 모르는 남자는 대단히 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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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결린 오른쪽 어깨를 왼손으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런 정도로 시원할리도 나아질리도 없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꼭 이렇게 되고 만다. 후회를 해본다. 병원을 찾아가 물리치료를 받고 마사지를 받을테지만 일이 급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하다면 오늘의 후회를 잊고 또다시 운동을 빼먹을 것이다. 책상에 구부정하고 긴장한 상태로 앉아있을 게 뻔하다.


J는 문득 그날이 이미지가 떠올랐다. 누군가와 차를 마셨다. 모과차 아니면 다즐링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엔 그 두 가지만 마셨으니까. 사람이 별로 없는 카페에 앉아 근황을 나누고 그 누군가는 다음주부터 치아교정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J는 그 순간 이제 그 누군가와 키스할 일이 없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마주보았다. 마음이 아니 몸이 동했다. 둘은 모텔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앞서 가던 커플이 모텔이 즐비한 골목을 걷고 있었다. 그들은 쏙하고 모텔 주차장으로 들어가버렸다. 저녁을 먹기엔 조금 이른 늦은 오후였다. J와 누군가도 그 커플처럼 쏙하고 들어가버렸다. 뒤따라 오던 사람이 있었다면 마치 증발한 사람처럼 사라졌다. 둘은 순식간에 모텔이라는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와의 섹스는 어땠는지.. 하기 전에 샤워를 했는지 하고 나서 씻었는지, 한 번 하고 말았는지 두 번은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J는 분명히 기억나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모텔에서 나왔을 때 앞서 가던 커플도 모텔에서 막 나와 그 골목을 걷고 있었다.


낮 동안 생겨나는 충동적인 욕망에 소비되는 시간의 길이는 비슷한 것일까? 연인처럼 다정하게 걷고 있었지만 그들도 섹스를 위해 의기투합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텔 골목을 나와 식당으로 들어갔다. J도 그 누군가와 밥을 먹었다. 차를 마시고 섹스를 하고 밥을 먹은 정도라면 분명 함께 걷기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외형 조건과 말이 어느 정도 통하는 사이였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J는 그 누군가가 누구였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무렵이 언제였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옷을 입고 있었고 어떤 말을 했는지도. 지금껏 잔 남자들을 떠올려보았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아 그들 하나하나 디테일을 떠올릴 수 있었지만.. 그날 함께 였던 남자는 끝끝내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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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목은 이번 생에 진화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책장 정리를 하면서 책 몇 백 권 꺼냈다 꽂았다고 해서

키보드 치기 힘들 정도로 아파선 곤란하지 않은가.

 

이사한 날, 뒷풀이를 겸해서 애인 씨와 술 한 잔 하다가

손목에 급통증이 찾아왔을 때

내 손목을 꼬옥 쥐어주었던 그의 힘과 체온이 문득 떠올랐다.

장난삼아 "붕대 감아줘"라고 말했는데

손과 팔을 칭칭 감아줘서

태어나 처음 해본 붕대질에 기분 좋아하며

권투 선수처럼 그의 가슴을 툭툭 치며 캐발랄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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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씨에게서 애틋함을 느끼는 포인트는

잠든 그를 지켜보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면서

왠지 내가 낳은 아이 같다고 느낄 때이다.

 

오빠 같을 때도

혹은 막내동생 같을 때도

때론 아빠 같을 때도 있지만

 

그런 다양한 느낌들 가운데

내 아이 같아서 상처받지 않게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내게 하나의 의미로 다가온 사람이구나 싶다.

 

같이 샤워를 하다 로맨틱을 넘어 에로틱해지는 순간 보다는

귀찮아 하는 애를 끌고 욕실로 들어가 등을 찰싹 때리고

그 넓은 등의 때를 밀어줄 때도 왠지 둘 사이가 각별해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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