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박함을 경멸하는 이유는 나 역시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거려서 일 것이다.





일대일 관계를 지향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것은 허구에 불가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라는 의혹을 품게 된다. 상대의 신의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도 상대의 애정이 급격히 줄어들 때 다른 애정을 필요로 한다고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와 이별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만족할만큼의 섹스나 애정표현이 부족하기에 그것을 충족시켜줄 상대를 찾는 경우가 있다. 남자들은 그것을 생물학적 본능으로 포장하고 호기심이라는 말로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즐기곤 한다.


오래 사귄 여자친구를 두고 양다리 같은 바람이 아니라 가벼운 섹스를 하는 정도로 바람피는 남자들은 질리도록 듣고 봐왔다. 그들이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본 적 없다. 너랑 사귈 마음은 없으니 섹스나 하자 당당하게 말하며 성적 매력을 드러낸다


반면 여자들은 어느 선에 가서는 이상할 정도로 과도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지나치게 섹스를 밝히고 음란한 게 아닐까 하는 자기 비판을 하며 모든 관계를 정리하곤 조신 모드를 유지하지만 생생한 욕망을 억누르고 있기에 그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애정결핍이 원인이든 성적 욕구의 불만족이든 기존의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 다른 관계를 통해 문제를 봉합하려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그런 관계는 끝내는 게 현명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별을 감당하기 싫고 모험이 두려워서 그런 방식으로 해소를 한다.


신의를 저버리는 나쁜 짓을 하고난 뒤 죄책감 느끼는 여자들의 상담메일을 제법 받게 되는데 그럴 수 있어라고 내가 이해를 해준다한들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런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쁜 짓이라는 인식이 있고 그걸 선택했다면 끝까지 위악을 떨던가! 


아니면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벗어날 용기를 내던가! 사귄다는 안정성을 기반으로 다른 욕구들도 채우려고 욕심을 내는 건 탐욕스러운 거 맞고, 이기적인 것이며, 나쁜 짓이다. 죄책감 느껴도 되는 일이다. 죄책감 느낀다고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2014년 7월 6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몇 편 읽다보면 인상에 깊게 남게 되는 것 중 하나가 파스타를 삶는 남자일 것이다. 지금이야 파스타 정도는 간편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재료가 인스턴트화 되었지만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흔치 않았던 90년대 후반에 파스타를 요리하는 남자의 이미지라는 건 이국적이고 희귀한 느낌이었다. 하루키 소설을 장악하고 있는 섹슈얼한 분위기 덕분에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매력은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이미 출근한 오전, 느지막하게 일어난 남자가 파스타를 삶는 모습이란 찬밥만 남은 밥솥, 식탁 위의 마땅치 않은 찬거리를 보고 포기한 듯 냄비에 물을 담고 라면을 끓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다.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제안보다 내가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어줄게요.’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 더 유혹적으로 들린다. 거부감 없이 집으로 초대해 섹스를 유도하는 것이 오늘의 요리가 가진 목적이라면 조금 더 정성이 더해진 요리일 때 낚시에도 입질이 더 잘 오지 않겠는가. 물론 빠뜨릴 수 없이 중요한 것은 요리의 맛이겠지만 그 순간 여자들이 끌리게 되는 것은 맛에 대한 기대보다는 나를 위해 요리를 하는 남자의 태도에 있다.

 

독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뛰어난 문장도 아니요 재미있는 줄거리도 아니요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분위기라고 말했던 하루키의 말처럼 결국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특출하게 뛰어난 자기만의 레시피나 타고난 손맛보다는 요리하는 남자라는 분위기. 남자의 요리는 일상이 아니라 환상을 파는 도구가 된다. 그렇기에 섹스를 위한 수단으로 요리를 이용할 줄 아는 남자는 영리한 셈이다.

 

식욕과 색욕, 둘 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 서로가 비교되고 비유된다. 잘 요리된 음식을 탐하는 방법은 섹스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입으로 집어넣어 삼키는 단순한 매커니즘으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공감각적으로 대상에 접근한다. 미각적 표현을 넘어선 음식의 시식평을 보고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섹스를 연상할 수 있는 묘사가 가득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섹스 역시 상대를 먹음직스러운 음식에 비유하고 섹스의 과정을 어떻게 맛 볼 것인가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나가며 흥분을 고조시킨다. 그렇기에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인 요리에도 섹시한 구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요리하는 여자인 는 과연 섹스어필할까? 내가 남자를 위해 요리를 할 때는 전날의 섹스가 만족스러우면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어머니가 차려주셨던 어째서인지 의문스러웠던 어떤 날의 화려한 아침 밥상처럼 나에게도 요리란 밤 동안의 실력 발휘를 하고 지친 그를 위한 보양이었다. 내가 느낀 만족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었다. 그러한 노동이 남자들에게 특별히 섹시하게 여겨지는 지점이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을 위해 준비한 요리를 보고 처음에는 호들갑스럽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마움을 표현하곤 했지만 반복되면 될수록 당연한 일이 되어 갔다. 요리하는 내가 섹시해지기 위해서는 알몸에 앞치마만 두른 채 스테이크가 타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그를 유혹해 싱크대 위에 걸터앉아 섹스로 이어질 게 뻔 한 진한 키스를 할 때뿐이었다. 그를 위해 요리에 매진할수록 식사 후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를 정리하는 모든 뒤처리 노동까지 묵묵히 해내야 하는 그저 부엌데기가 되어 갈 뿐이었다.

 

그러나 요리하는 여자와는 반대로 요리하는 남자는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문화와 소비를 주도하는 2~30대 여성의 취향에 맞는 남성 셰프나 연예인이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요리하는 모습이 인기를 끌면서 요섹남같은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요리하는 남자는 섹시하다남자들은 요리가 가진 성적 매력을 그대로 덧입고 여성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요리한다라는 특성이 남성의 새로운 매력의 요소로 부각되면서 실장과 본부장으로 대표되던 로맨스풍의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의 직업군에 오너 셰프가 추가되기도 했다. (<멘도롱또똣><오 나의 귀신님>은 이러한 트렌드를 재빠르게 드라마에 차용해 흥미로운 소재로 녹여냈다.) 픽션의 세계뿐만 아니라 실제 셰프의 인기도 나날이 높아졌다. 요즘 화제가 되고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의 소재는 가상연애나 육아가 아닌 요리에 집중되고 있으며 셰프의 TV 출연은 요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더욱 끌어 모았다.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원시시대부터 먹을 걸 구해오는 남자야 말로 몸을 던져 함께 후손을 만들어낼 밤을 보내기 딱 좋은 우성인자이지 않았는가! 이제는 수렵이나 채집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기술이 발달하고 물질이 풍족해졌으니 통상적으로 밥을 잘 사주는 남자, 거기서 더 나아가 내게 요리를 해주는 남자가 그에 대적할 만하다.

 

요리는 생각보다 강도 높은 노동이다. 그렇기에 요리를 직업으로 삼은 이들의 체력과 열정 그리고 일에 대한 집중력, 덧붙여 창의성까지 엿보게 되면 섹시하다는 형용을 붙이는 것이 결코 과한 수식이 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요리하는 남자가 새로운 경향이 되고 있고 남자들 역시 요리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타 셰프의 열풍과 일인생활자의 증가로 요리를 배우는 현대 도시남성들이 늘어나고 주방용품 시장의 새로운 소비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건 안타깝게도 일상적으로 요리하는 남자는 여전히 그 수가 드물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체의 주요 소비층인 여성들은 TV속에서 근사한 요리를 선보이는 셰프나 어설프긴 해도 하나씩 배워나가며 요리를 해나가는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위해 요리해주는 남자를 바라고 꿈꾸게 된다. 요리하는 남자는 결국 무료한 삶의 이벤트이다. 섹스어필이 희소성에 있다는 말이 정답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요리를 할 줄 아는 남자가 평생 내게 요리를 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요리는 여자의 몫, 요리하는 시간을 삶의 일부로 삼게 되는 건 여자들이다. 그렇기에 연애와 섹스의 판타지 리스트에 요리하는 남자가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요리하는 남자의 진짜 섹시함이란 목적을 성취한 후에 드러나게 되는 게 아닐까. 이 식사가 끝나고 나면 섹스 할 게 뻔 한 분위기 속에서 그가 해주는 요리를 맛있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여자는 드물다. 볼록 나온 배로 섹스에 임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곤란하다. 배에 힘을 준채로 섹스하면 성감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공복으로 임한 격렬한 섹스가 끝난 후에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게 기꺼운 마음으로 요리를 해주는 남자야 말로 내게 섹시하다는 인상을 준다. 어떤 관계는 과정이 달콤하고 애틋했다 한들 한 번의 섹스로 종결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한 번의 섹스만으로 충분하다. 굳이 또 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기 전엔 섹시했지만 섹스가 해소하면 애초의 섹시한 매력은 소멸된다. 진짜 섹시한 사람은 섹스 후에 결정된다. 요리하는 남자의 섹시함도 마찬가지이다. 유혹을 위함이 아닌 관계의 지속이라는 긍정적 의미와 나를 배려하고 아낀다는 신호로써의 요리라면 그것이야 말로 신뢰할만한 섹시이자, 섹스의 기술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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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칼럼니스트입니다 라고 말하면 남자들은 곧잘 '제 얘기도 언젠가 쓰겠네요'라고 반응하는데 그럴 때마다 '소재거리도 안 되는 게 깝치지 마세요'라는 말 대신 '전 실제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쓰진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섹스칼럼니스트라는 걸 알면서도 섹스에 대한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면, 자신과 만나는 중에 그렇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냐고 항의를 듣기도 하는데..



일 좀 하자. 일. 내가 마치 다른 남자랑 자기라도 한 것처럼 매도할 때는 진짜 딴 남자랑 자고싶다. 섹스칼럼이긴한데 방점이 글 쓰는 거에 안 붙고 섹스에 붙어서 피곤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그건 이젠 내상을  덜 입는다쳐도 관계에 대한 성의있는 성찰없이 쎅쓰 쎅쓰하는 글만 쓴다는 편견이나 문학적 소양이나 깊이가 없다는 생각도 좀 웃겨. 네네. 저 4년제 대학 나왔고 문예창작 전공했어요 (그런데 그게 글 잘쓰는 거랑은 아무 상관없습니다) 

섹스도 할만큼 해봤고 제법 잘 하기도 해요. (자기입으로 이렇게 말하니까 웃긴 거 알겠죠?)

또 뭐 말해야 하지?



아. 클럽은 잘 안 가고 원나잇도 잘 안해요. 나이가 많단 이유만으로 꼰대질하고 성적 능력이 감소하기 시작해서 괜히 자격지심있는 남자보단 차라리 서툴지만 가르치는 만큼 역량 발휘를 하는 나이 차가 제법 나는 귀여운 연하들을 좋아해요. 섹스에 대해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천박한 수준까지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진 않아요. 그러니까 글을 쓰는데 공교롭게 섹스가 소재인 거지 제가 섹스섹스해서 글을 쓰는 건 아니라는 걸 아마도 영리한 사람들은 알겠죠. 뭐. 섹스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건 제가 어릴 때부터 공포감 조장이 아닌 바른 성 교육을 받았다는 걸 증명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사랑과 섹스를 동일선상에서 다루지 않는 점이 바르지 않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랑과 섹스에 대한 분홍빛 헛된 환상이 아니라 짙은 파랑의 냉소 가능한 현실을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바닥에 발을 딛고 서서 모험을 해보자는 거죠. 백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궁극의 긍정적 쾌락을 찾아서. 외로움 때문에 섹스하진 않아요. 사랑받고 싶어서 섹스하지도 않아요. 섹스하고 싶을 때 섹스합니다. 물론 대체적으로 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남자같은 뇌구조일지도) 물론 그렇다고 인생이 섹스로 점철된 건 아닙니다. 차라리 미드나 일드면 모를까.ㅎ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는데 늘 똑같던 얼굴의 광채가 조금 다르다 싶으면 

어김없이 배란기 알람이 울린다. 몸이 너무나 정확하다.



농담처럼 365일 발정기라고 말하곤 하지만 

배란기를 전후로 해서 몸이 반응이 확실히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박혀들어와 부딪히는 감각에서 살아있다는 걸 느끼거나

입안 가득 물린 채 일그러진 모습에서 자신감 같은 걸 뿜어낸다.

집중하는 게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판판하고 단단한 가슴을 양손으로 밀어내지만 

그 아래 깔려서 무게감을 느끼고 싶은 기분.











일본 AV에 스즈키 잇테츠가 있다면

X-ART에는 Jake가 있습니다.







제이크가 출연한 작품을 처음 본 게 바로 Rendezvous였는데요.

귀엽고 동글동글하고 어리숙한 이미지로 나와서 

위협적이거나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누나에게 조련 당하는 순진한 연하남을 제대로 연기하고 있달까나요.





인트로 영상에서 제이크는 자기 집 거실에서 안절부절하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분 남짓 되는 장면이지만 내 남자친구가 처음으로 집에 초대했을 때 이렇게 긴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풋풋거리게 되죠.

- 저 같은 경우, 남자친구의 초대를 받고 집에 갔을 때 

데이트 할 때 입고 나왔다가 내가 예쁘지 않다고 핀잔을 줬던 티셔츠를 잠옷으로 입고 

(나를 만날 때뿐만 아니라 밖에 나갈 땐 절대 입지 않는 옷이 되었다는 의미로)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양치질하던 칫솔을 입에 물고 문을 열어줬는데

제이크와 다르게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느낌이 아니라서 그것 또한 귀여웠습니다. 


 


 


 




드디어 등장한 여자, 압도적인 뒤태와 유혹적인 가죽팬츠 

그걸 넋놓고 바라보는 제이크의 표정도 귀여워요.








역시 능숙하게 상의 탈의를 하시고

제이크를 제압합니다.


 


 






Rendezvous라는 작품에서 저의 첫번째 모에 포인트는 현란한 섹스씬은 아니었고

이 순간의 제이크의 표정이었는데요..>_<

여자의 가슴에 열렬히 반응하는 건 뭔가 애송스러운 면도 있지만 

그래도 여체에 대한 감동을 표현해주는 건 섹스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죠.

영상으로 보시면 더 얼빵한 표정으로 감탄해마지 않습니다. 







섹스의 진행은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갑니다. 

저 가죽 팬츠를 다 벗지 않은 상태로 섹스가 이어지고

공간도 소파로 한정되기 때문에

바지를 다 벗지 않고 소파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체위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즐기시면 될 것 같네요.





저의 두번째 모에 포인트는 섹스가 끝난 뒤에 등장합니다.

섹스가 끝나자마자 후희랄 것도 없이 여성은 소파에서 일어나 볼 일은 다 봤어! 라는 포스로 가죽 팬츠를 끌어올립니다.

옷을 제대로 챙겨입지도 않고 흩어진 옷을 주워서는 집을 나서려고 하고 제이크는 아쉬운 듯 그런 그녀를 붙잡아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뜻대로 될 리 없이 시크하게 떠나는 여성. ㅎ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아쉽고 서운한 표정을 짓지만 

그녀가 돌아서서 인사를 할 때는 잘 가라고 손 인사를 건넵니다. 

그때 웃는 제이크의 표정이 모에심을 자극했달까나요.


 


 


 








그러나 아쉽게도 제이크는 이런 순진 귀염 콘셉트를 유지하기 보다는

SM이나 쓰리썸을 넘어선 그룹 섹스까지도 촬영하는 편이라 

X-ART의 다른 작품에서 전혀 다른 사람 같은 분위기를 내기도 합니다.

얼굴은 서양인 치고 어려보이고 귀염귀염하긴 하지만 그 물건만큼은 으흠 근심이 없겠군 싶습니다.

그것 역시 영상으로 확인하시길..



어쨌거나

Rendezvous의 섹스씬은 연인 사이에서 무리없이 할 수 있는 정도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제이크라는 배우의 입문용으로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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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3일에 www.ize.co.kr에 강명석 씨가 쓴 <장동민, 사람부터 됩시다> 칼럼을 읽고 '욱'하고 말았습니다.



그 칼럼에서 장동민을 비판하기 위해 '야성에 가까운 본능에서, 약자에 대한 시선에 대해 전혀 사회화 되지 않은 정글의 법칙에서 나온 것이다.'라며 유인원의 리더로 문명을 만든 시저의 본성을 연결시킨 게 무리수였다고 봅니다.

읽는 순간 섹시똑똑감성충만의 시저를! 부들부들! 


덕력이 부족하고 덕심이 얕아 캐릭터를 잘 파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혹성탈출>의 시저와 <화이트칼라>의 닐 카프리 만큼은 잘못 건들면 부들부들입니다. 부들. 


시저 못생겼어. 침팬지짐승! 막막 이래도 상관없지만 폭력적이라거나 인간다운 면모를 가진 동물 이렇게 말하는 거 정말 싫더군요. 시저는 시저입니다. 인간다움에 대해 인간을 과신하는 표현은 싫습니다. 인간다움이 문명적이고 선하고 지적이라는 근거만큼이나 그 반대도 넘치는데 시저에게 인간답다라고 하는 것도 모욕입니다. 그런 것도 모자라.. 장동민 같은 후레자식과 비교되다니!!!!


시저만한 인간 남성을 찾는 게 오히려 미션임파서블인지도 모르는 인간 세상에서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기에 사람들이 싫어한다'로 장동민과 비교되어야 하다니.. 시저가문의 수치이자 치욕입니다. 


시저는 우성 수컷입니다. 자신의 힘을 약자에게 과시하지 않습니다. 폭력적인 것을 본성이라고 말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신체적 능력이 인간에 비해 뛰어난 것 뿐입니다. 시저가 분노를 드러내고 그 힘을 쓰는 순간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는 인내하고 배려합니다. 아이와 아내를 사랑하고 동료를 지킵니다. 장동민을 혹성탈출 시저와 비교한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사람들이 시저를 두려워한 건 그가 야만적 본성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보다 우월한 힘을 가져서였습니다. 그 자체가 두려운 사람들이 시저의 뛰어난 공감 능력과 리더십 그리고 포용력을 보지 않으려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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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남성의 성역할은 과도하고 책임감이 많이 따른다고 여기기에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하고 하는 소리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남성들이 

성적 호기심의 영역이나 성적 폭력성에 한해서는 '남자는'이라는 소리를 하는 걸 볼 때가 있다. 


자기편의적으로 '남자는 다 그래'라고 하면, 남자니까 그럴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남자들까지 

싸잡아 욕먹이는 건데 마음 속에서 그런 문제로 싸워보지 않은 남자들은 한 명도 없지 않아서 

그런 말에 넓은 이해심이 작동하는 건가. '남자는 다 그래'라는 말에 불쾌를 표해야 할 것 같은데...


'남자는 다 그래'라는 말로 자신을 방어하는 남자들과 뭘 도모해야하지?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거절도 상처받지 않게? (게다가 여성이 거절할 때 조심스러운 것은 그 개새끼가 돌변해서 나를 해칠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한거지 본격 쌍년짓 하겠다는 게 아니거늘) 내부 반성을 왜 외부로 돌리는 건지?










본능 앞에서 고결할 필요는 없다. 상대가 동조한 상태에서 둘의 언어가 질펀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다. 

둘 다 동물이 된 순간 음란하고 속된 욕망을 서로의 귓가에 흘리는 건 일종의 최음제 역할을 한다.

욕망의 언어는 일상적인 표현에 다른 뉘앙스를 싣는다. 몰캉몰캉한 로맨틱의 코드를 끈적하게 바꾼다. 

그렇기에 관계가 유혹의 단계일 때 상대에게서 발화된 언어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혼자 성급하게 짐승이 되어 내뱉는 말의 수준은 딱 사람의 본질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월드스타든 인권운동가든 정치인이든 출판종사자이든

소위 사회적 명성과 지위를 가졌다는 남자들이 내뱉는 욕망의 언어가 노출되었을 때 

여자를 욕망하는 표현이나 어휘는 복사붙여넣기한 것처럼 흡사하다. 빤하고 뻔한 말들을 돌려쓴다.


몇몇 남자들은 자기가 하는 말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큭큭거리며 안도한다. 

상대에 대한 고압적이고 망상적 태도에 대한 반성은 없다. 

결국 다를 거 없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같은 급이 된다. 

욕망을 언어로 표출하는 남자가 모두 천박한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니다.







디스패치에서 보도한 이병헌 문자 사건을 보면서 생각한 것들





내가 오직 '섹스'만이 목적인 관계에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할 때 
그 말이라는 것은 "콘돔 써" 라고 말하면 "알았어"라고 하는 것이고
"오늘은 펠라 하고 싶지 않아"라고 하면 "굳이 안 해도 돼" 라고 답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해서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섹스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원하는 것을 요구할 때 싫고 좋다라는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도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그런 관계에서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와 나보코프의 첫사랑에 대한 강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며
아트 블래키의 대범한 리더십에 대해 논하지 않을 것이다.
무조건 옳은 생명체인 고양이에 대해서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몇 년이나 살아왔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리는지에 대해서도 함구한다.
나이도 이름도 어떤 정보도 필요없다는 것이다.


섹스에 필요한 의사소통 이외에 그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않다.
그 관계에서 대화가 대체 무슨 소용인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잘 듣는 것이 훈련된 내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불거리지 않을수록 더 섹시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모른 채, 
동시에 나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무의미한 일에 절절하게 매달린다. 
그들이 나에 대해 안다고 나를 이해하는 것도 우리 사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필요없는 정보들을 나열하는 건 꽤나 귀찮은 일인데 집요하게 물어댄다.
마치 자신들에게는 대화가 필요한 것처럼.


그러나 대화의 자질과 능력을 갖춘 남자들은 정말이지 드물다.
곡해하지 않고 듣는 법도 잘 모르면서
발화하는 내용들도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들이 내뱉는 다정한 말들이란 대부분 여자와 자기 직전 그리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말하면 부당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좋은 대화상대인 남자들도 있으니까. 
내가 모든 남자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발끈하지마라. 내 글이 불쾌할 정도로 나쁜 것이 아니라 네 녀석이 찔려서 뜨끔한 것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전제로 퍼블릭에 썼던 글은 여러모로 오해 가능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나는 대화 어쩌구 하는 남자들은 잘 믿지 않는다. 남자들의 언어란 결국 섹스일 뿐이라는 걸 굳이 다른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하지 않아도 늘 느끼면서 살아왔다. 




이 퍼플릭은 그날 다른 SNS에 A가 쓴 글에 대한 내 단상이었다. A의 글은 아래와 같다.

 "내 이상형은 예쁜 여자야"라고 하는 남자애들 중에 실제로 외모가 아닌 다른 데 꽂혀버리는 경우가 있는 반면, "난 성격을 봐. 대화가 통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라고 공언하는 남자애들은 백퍼 외모에 꽂히더라. 나도 예외를 발견해 99퍼......라고 쓰고 싶으나 지금까지 보고 들은 케이스들 중에 예외는 없던데? 



A와 나는 먹물 남자들의 이중성에 대해 치를 떨며 까대곤 했다. 모르면 멍청해서 그렇다고 동정이나 할텐데 자기 유식은 만천하에 떠벌리면서 정작 행동이 필요할 땐 자신의 지식과 연결짓지 못하는 X 때문이었다. X는 공공연하게 대화 통하는 상대에 대한 열망을 말하고 다녔지만 그가 꽂혀서 졸졸 쫓아다니는 여자들은 그와는 대화가 통할 리 없는 영역의 그저 예쁜 여자들이었다. (비단 그 남자 하나만 그래왔던 게 아니라 피로감이 폭발한 것이다.) 자기 반성도 못하고 (물론 자기 반성하는 남자는 위선적이라고 버나드 쇼가 그랬던 것도 같지만) 그러면서 엄한 여자한테 들이대다 잘 안 되서 징징거리며 언어적 공해를 일으키는 그로 인해 다들 너무 질려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 맥락과 상관없지만 M의 글을 보게 되었다. 

남자들이 더 이상 발기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왔을 때의 그 절망감이 왠지 이해가 간다. 언어를 잃은 하나의 식물로 남은 인생을 보내야 될테니까.



아니, 왜? 그걸 왜 이해를 해? 라는 생각이 든 거였다. 동정하지마. 자업자득이야. 다른 언어를 배우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고 덧붙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베넷과 결혼한 이사도라는 정신분석학회에 취재차 참석했다가 에이드리언을 만나게 된다. 결혼의 안정감과 모험의 열정 사이에서 고뇌하며 여성의 삶과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고 있던 책이었다. 
그런데 마침 이사도라를 그렇게 달콤한 말로 꼬여내던 에이드리언이 결정적 순간에 발기가 되지 않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남자에게 욕망과 섹스라는 것은 여자보다 더 강렬하고 마치 더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특히 그걸 대표하는 페니스라는 건 남자의 긴 인생을 두고 봤을 때 제대로 작동하는 시기란 찰나일 뿐이다. 그것은 결국 늘 패배의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들에겐 겸허함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공포감 혹은 두려움을 정면에 마주하지도 못한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나를 욕망한다고 말했으면서 나와 침대에 들어가서 제대로 서지 않는 페니스로 덤벼들던 남자들이 생각났다.
나를 꾀어내기 위해 술을 잔뜩 먹이다 보니 자기 주량을 넘어서서 자기 몸이 통제가 안 되는 남자도 있었고
자신의 판타지 속에 있던 내가 실재하자 지나치게 긴장한 남자도 있었다.
그런 그들이 내게 뻔뻔하게 요구한 것은 펠라치오였다.
그렇게 하면 흐물한 그것이 단단해져서 내 몸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내게 모멸감을 준다. 
(사실 모멸감까지는 아니고 그저 그 남자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지만 
그 순간의 분함을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그렇다고 할까나.)
펠라치오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할 수는 있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잘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규칙이 있었다. 만족스러운 섹스 후에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뤄지는 것이 펠라치오였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섹스로 이어지기 위해서, 난 한 번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쓰고 말았다. 

발기하려고 섹스하는 거면 그냥 입이랑 해. 나랑 하지말고. 잘 했기 때문에, 날 만족시켰기 때문에 기특하고 사랑스러워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행위가 아니라 강요에 의한 것은 나는 절대 할 수 없다. "되게 까탈스럽네. 시발!" 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아니 에르노의 문장을 사랑한다.

그 사람이 나를 욕망하느냐 욕망하지 않느냐 하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보면 당장에 알 수 있는 유일하고도 명백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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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분석한 다양한 인문학 서적들을 읽어나가고 있지만 

머리로 아는 그 지식들을 그 다음의 사랑에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누구나 사랑을 경험하기에 사랑이 배울 수 있고 숙달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믿는 것 같다.


자신이 경험한 사랑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 이번 사랑에서 진화의 흔적을 찾는 것은 

사랑에 빠진 이유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사랑에 능숙해졌다기 보다 기대를 덜 하게 되었다 정도로 태도가 변한 것 뿐인데 

그게 사랑을 '잘'하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

'사랑의 기술을 표피적으로 습득한 이들의 훈련된 무능'

연애계발서 같은 글을 통해 연애를 배운 이들은 사랑에 대한 조언을 원할 때

자신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으면서 자기맘대로 되길 바라며 부담은 떠안지 않으면서 원하는 걸 가지려한다.





.

'무슨 대학의 무슨 박사가 연구한 결과 어떤 통계로' 

이런 방식으로 연애의 방식을 조언하는 걸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연애가 소위 연구결과의 평균 안에 들어가 있다고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방식은 상담하기 편하다. 우선 권위에 기대'있'어 보인다. 

하지만 가끔 나는 그 박사들과 그 연구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게다가 사례들이 대부분 외국의 것이라 한국적 상황에 맞게 일치하기도 어렵다. 

케바케로 접근하면 힘드니 그런 게 필요할 때도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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